하나님이 싫어하는 원.불.교.인(?)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출애굽 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들은 약속의 땅을 향해 행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기적을 맛보았으나 자신들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자 모세와 아론을 대적한다.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면서 대적한다.
왜 그들은 불평하며 원망했을까?
첫째, 왜 모세와 아론만 왕노릇하는가?
비교하며 열등감애 빠졌다.
그들의 눈에는 모세와 아론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들을 몰아세운다.
둘째, 왜 빨리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게 빙빙 돌리는가?
이제 광야생활이 지겹다.
밭이나 포도원을 왜 주지 않는가?
셋째, 애굽에서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애굽은 그래도 선진국이 아니던가?
비록 거기서 노예였을 망정 지금과 비교하면 그게 더 나았다고 생각된다는 주장을 펼친다.
엄밀히 생각해 보자.
첫째, 그들은 자신들의 불신앙과 우상을 만든 죄를 저지르지 않았던가?
하나님을 대적했던 전과가 있는 죄인들이다.
둘째,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보고를 듣고는 원망하고, 불기둥이 환하게 비추고 있는 불빛 아래서 밤새 통곡하다가 모세에게 돌을 던지려 했다.
살인도 서슴지 않는 악한 자들이다.
셋째로, 그들은 모든 책임을 모세에게 떠 넘기고 있다.
그들이 불신앙과 하나님을 거역한 죗값으로 광야에서 38년의 세월을 지나 다다 죽어야만 했다.
그래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없었지 않았는가.
싫증의 원인
첫째, 불순종의 죄의 짐을 져야만 했다.
둘째, 광야생활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셋째, 매일 반복되는 삶에 싫증이 찾아왔다.
그들은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에 감염되어 그들의 영혼은 죄의 은밀하고 교활한 계략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영혼의 싫증>은 신자 안에 은밀하게 침투하여 자신을 숨긴 채 호시탐탐 그를 무너뜨릴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온전히 좇았은즉"의 신앙, 오직 하나님을 향한 불붙는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광야에서 반복적인 삶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따르는 것(모세의 인도를 받는 것에) 싫증으로 찾아왔다.
이같이 신자들에게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싫증이 찾아온다.
영적 싫증은 하나님의 간섭, 속박(?), 돌봄을 거부하는 것이다. 더욱 강렬해지면 하나님을 향한 반감과 적의로 까지 나타난다.
그 싫증은 마침내 하나님 앞에 죄를 짓게 된다.
그 죄는 무엇인가? 원. 불. 교. 인
원망, 불평, 교만, 인색함이다.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불평하고, 마름이 교만하여 대적하고, 순종하고 따라야 하는 일에 인색해진다.
이에 대해 하나님의 판단은 단호하다.
결코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지 않는다.
그들은 광야에서
무덤도 없이,
흔적도 없이,
그들을 위해 애곡해 줄 일도 없고,
그렇게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는
쓸쓸히 죽음만 기다릴 뿐이다.
이것이 싫증을 이기지 못한 자의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