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눈의 나라 이야기
5월 중순, 일본의 최북단 홋가이도(북해도) 공항에 도착했을 때 반팔을 입어도 춥지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1시간여 이동하니 눈으로 덮여있는 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산맥이 치마를 두른 듯 눈에 덮인 이곳은, 신들의 정원이라 불린다. 높은 산에는 6월까지도 눈이 쌓여 있어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겨울은 최고의 선물을 선사한다.
눈 덮인 산의 위용을 보면서 1968년 일본인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소설, 설국( 雪国 ( ゆきぐに ) , 유키구니)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이 문득 생각이 났다.
설국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한다.
글의 성패를 좌우하는 첫 문장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눈의 나라)이었다.
나무나 아름답고 영롱하게 느껴진다. 마치 내가 그곳에 서 있는 듯하다.
이 첫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매료시킨다.
독자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하고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동서로 관통한 시미즈터널은 마치 전혀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국경처럼 두 곳은 지형도 기후도 전혀 다르다.
번역가 사이덴스티커는 영어로 이렇게 번역했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눈의 나라)이었다.
"The train came out of the long border tunnel into the snow country."
(열차는 국경의 긴 터널을 나와 설국으로 들어섰다.)
번역기로는 "After passing through the long tunnel at the border, it was snow country."
이어서 두 번째 문장은
夜の底が白くなった。
밤의 아래쪽이 하얘졌다.
"The earth lay white under the night sky."
(땅은 밤하늘 밑으로 하얗게 펼쳐져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가.
번역기로 영어 문장은 "The bottom of the night turned white."이다. 단순하고 매우 조잡하기 짝이 없다.
번역가가 저자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저자의 눈으로 그 광경을 경험해 보지 않고 번역했다면 천박스러운 삼류 소설에 불과했을 것이다.
분명 일본어로 읽는 것과 영어로 읽는 것은 언어의 구조가 다르기에 미세한 차이점이 보이지만, 의역을 하면서도 저자가 전달하려는 의도를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번역가가 얼마나 빛나는 자리인지, 영어로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노벨상을 수여하도록 만든 일등공신이다.
첫 문장을 탄생시킨 기차 터널은 1931년에 개통된 단선터널이다.
이 터널은 일본의 중부인 혼슈지방의 군마현에서 니가타현으로 넘어가는 시미즈터널이다. 당시에 느린 기차가 깜깜한 약 10킬로(9,702m)의 긴 터널을 지나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 곳으로 빠져나왔는데, 세상은 온통 눈으로 덮인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차는 신호소에서 멈추었다.
信号所に汽車が止まった。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向側の座席から娘が立ってきて、島村の前のガラス窓を落した。
건너편 좌석의 여자가 일어서 다가오더니, 시마무라 앞의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雪の冷気が流れこんだ。
눈의 냉기가 흘러들었다.
娘は窓いっぱいに乗り出して遠くへ叫ぶように、
여자는 한껏 창 밖으로 몸을 내밀어 멀리 외치는 듯이,
「駅長さあん、駅長さあん。」
"역장니임, 역장니임ー"
明りをさげてゆっくり雪を踏んで来た男は、襟巻で鼻の上まで包み、耳に帽子の毛皮を垂れていた。
등불을 들고 천천히 눈을 밟고 온 남자는 목도리를 콧등까지 두르고, 귀에 모자의 모피를 드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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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의 배경, 유자와 다카한료칸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p.7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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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보이는 세상
우리는 어떤 인간관, 세계관과 무슨 사상을 가졌는가에 따라 세상과 나를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노벨상에 빛나는 영예의 주인공이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나는 작품을 통해 죽음을 미화하고 인간과 자연과 허무 사이의 조화를 추구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 고독과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1971년 마치 눈이 녹듯이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등을 썼고, <노인과 바다>(1952)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헤밍웨이(1899~1961) 역시 그보다 10년 전 1961년 엽총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1900년대 전반과 중반은 암울한 전쟁으로 몸과 영혼을 망가트려지던 시대였다.
서로가 상대를 죽여야만 사는 시대,
돌아갈 고향을 상실하고,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들을 허무주의에 빠지게 만들었던 시대.
이들에게 실존주의는 답을 주지 못했다.
그토록 위대한 인간을 노래했던 니체(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조차 마치 더듬이를 상실한 따개비처럼,
방향을 잃어버린 채 망망대해에 떠 있는 돛단배처럼,
세상을 떠돌며 방황하게 만들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허무주의에 빠져들고 있다.
왜 그는 죽음을 그리워하고, 인간과 자연과 허무 사이에 있었을까?
인간은 본래 고독, 외로움은 모든 인간 안에 존재하건만, 그 고독과 외로움이 모든 사람의 죽음을 앞당기게 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사실은 절망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마음 안에 있는 질병이다.
고독사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심지어 안락사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함께, 그리고 어울림
나는 함께라는 말을 좋아한다.
함께는 홀로 있어도 홀로 있지 않고,
외로움이 있어도 외로워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나는 오늘 무엇을 위해 살고, 어떻게 살 것인가?
함께 희망을 노래하고,
"함께, 어울림"의 공동체를 만들고
서로 사랑하며
삶의 이유를 찾아가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