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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과 관계를 회복하라

[明泉] 맑은 샘물 2023. 4. 22. 22:33

시편 42편 <고라자손의 시>  

만일 이 시의 저자가 다윗이라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하여 요단 강 건너편으로 바르실래에게 도망하던 때에 쓴 시일 것입니다. 

발이 부르트고 짓이겨져 가시 밭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기도를 했을까요? 

만일 다윗이 지은 시라면 왜 표제어는 <고라 자손의 시>라고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고라의 자손은 모세를 반역하다가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을 삼키는 형벌(민 16:21)을 받은 후손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훗날 다윗 왕을 통해 어느 정도 신분이 회복되어 다윗 시대에는 성전에서 찬양을 담당하던 자가 생겼습니다(대상 25장, 26:1). 아마도 그중 한 사람이 도망하던 다윗을 따라갔는데, 다윗이 이 시를 읊었고 그가 기록하여 보관하다가 전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알 수 는 없습니다.

표제어처럼, 그가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라는 암시의 구절을 통해 고라자손 중의 한 사람이 지은 시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는 차마 자신의 이름조차도 거명할 수 없는 비천한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일평생 반역의 후손이라는 멍에를 지고 살아야 하지만,

하나님이 위로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은혜를 표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가 이름을 쓸 수 없었던 것은 우리 조상 고라는 하나님과 그의 종 모세를 거역하고 반역한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일 것입니다.

일평생 늘 속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조금이나마 신분이 회복된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성전에서 찬양으로 섬기는 그 기쁨을 "시와 찬송으로" 남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대적하고(허물), 불순종하던(죄) 사람들입니다. 

어찌 그 은혜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2절 하, 시인은 지금 상황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너무나 가슴 아파합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모하는지 1절,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그는 하나님을 목마른 사슴처럼 헐떡이며 찾고 있습니다. 

3절,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조롱하는 자들로 인하여 그는 눈물이 폭포수같이 흘러내립니다. 

4절,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그는 전에 성일 곧 절기 때에 무리를 이끌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동행하여 찬송을 가르치며 하나님의 집으로 그들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도리어 반역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성전으로부터 멀리 도망하여 피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언제 돌아갈지, 안전하게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생각하면 막막합니다. 걱정이 태산 같고, 염려가 강물같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낙심되는 자신의 영혼을 부둥켜안고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 해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영혼을 타이릅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분명히 그가 나타나 도우실 것이다. 그것을 인하여 찬송을 부를 때가 올 것이다. 결코 그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라며 소망을 갖으라고 말합니다. 

 

시편 42:5상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 해 하는가.

시편 42:5상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성경 본문의 <해석>보다는 <적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정작 <나 자신>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심리학에서 만든 나를 알기 위해 성격유형검사(MBTI, 스토롱, 애니어그램 등)나 전문상담가를 통해 나를 객관적으로 알려주는 방법을 활용합니다.

그런 것보다 아래의 질문들은 당신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보여줍니다.

▶ 나 자신과 관계 점수, 각각 항목에 점수로 표시해 보라.

(1) 나의 외모  (만족한다, 조금 만족한다. 만족하지 않다)

(2) 나의 성격  (만족한다, 조금 만족한다. 만족하지 않다)

(3)나의 재능  (만족한다, 조금 만족한다. 만족하지 않다)

(4)구원확신   (만족한다, 조금 만족한다. 만족하지 않다)

(5)나의 비전  (만족한다, 조금 만족한다. 만족하지 않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삶이 변화됩니다.

첫째, 삶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4:19)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어부가 되면 그는 진정으로 예수꾼입니다. 

예수가 그의 주인입니다.  예수께서 그를 변화시킨 증거입니다. 

둘째, 삶의 목표가 달라집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복음은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위대한 <교환의 법칙>이 있습니다.

"나의 연약함(DNA)을 주님께! 주의 강함(DNA)은 나에게! “로!“ 옵니다.

기쁨과 감격과 놀라운 행복을 누리게 해 줍니다.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결코 손해가 없습니다.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예수 내게 행하셨네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1. 그런데 나는 왜 불안 해 하고 염려할까요?

사람이 살면서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그가 누구인지 가장 잘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지"

가나안을 정탐하도록 보냄을 받은 12명의 정탐꾼처럼 극명하게 나뉩니다.

본문 말씀에서 믿음의 사람인 <시인>은 자신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믿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누구라도 경험하게 되는 감정입니다.

그런데 "그 불안을 어떻게 해결하는가"는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와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여줍니다.

내가 불안 해 하고, 두려움에 휩싸일 때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것은 누구입니까?

먼저는 <나 자신>, 가족, 스승, 그리고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합니다.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시편 42:5상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 해 하는가?

성경은 인생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을 제시합니다.

성경은 인생 성공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완벽한 <교과서>입니다.

누구에게나 <어려움과 고난>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 고난(苦難)이 숨겨진 축복이기도 하고, 위기(危機 : 위태롭거나 기회) 일) 수도 있습니다.

그때에 나는 <무엇>, <어떻게> 할 것을 결정해야 합니다.

결정(決定)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뿌리인 카이데레(caedere)인데, 문자적으로 잘라냄’이란 뜻입니다.

 

그렇다면 <결정>하는 것은 <무엇>을 잘라내는 것입니까?

시인은 무엇을 잘라내고 있습니까? 

그는 불안, 두려움, 염려, 걱정, 등 온갖 감정들입니다. 

사람이 어떤 (상황) 앞에 생각하고 결정하는 데는 다음 다섯 가지 과정을 거칩니다.

<감정, 느낌, 생각, , 행동> 순으로 진행됩니다.

감정이 제일 먼저 나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마음에 느끼는 감정을 입으로 말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감정은 옳은 것입니까? 정당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감정은 수시로 바뀝니다. 

만일 그 결말을 알고 있다면 당장 눈앞에 어려움이 있어도 감정은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결말을 모르기 때문에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감정과 느낌은 실제가 아니므로 잘라내야 합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결정할 것은 무엇입니까?

<감정과 느낌>을 허상이므로 즉시 잘라내야 합니다.

 

영적 사고방식,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태도

어떻게 감정이 느낀 것을 잘라냅니까?

바로 지성(知) 곧 이성을 가지고 문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일이라면 하나님이 처리하실 것이요, 

"반드시 그가 피할 길을 주실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감정(情)이 어떠하든지 우리의 이성이 생각한 것을 의지(意) 곧 믿음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면 감정은 다스려집니다. 감정을 잘려 나갑니다. 

시편42:5상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 해 하는가?

기억하십시오.

<감정>은 어떤 상황 앞에서 낙심하게 하고,

<느낌>은 낙심, 불안, 걱정, 낙망(落望)하고 절망에 이르게 합니다.

절망(絶望)은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이때에는 누구의 조언(助言)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자기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기감정(끌려 다니지 말고) 다스려야 합니다.

내 영혼아! 너 낙심하지 마!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자기 느낌을 그대로 인정하지 마십시오!

그 감정과 느낌은 내가 느낀 것이지, 그것이 사실이거나 정확한 진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생각>=()>가 필요합니다.

감정과 느낌을 내려놓고, 이성으로 하나님과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을 찾으라.

결국 의지인 <믿음>이 해결합니다.

이렇게 선언하자. 10번 이상 외치자.

욥기 23:10(오직)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우리의 욥의 인내의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마침내 욥, 그가 말한 대로 하나님은 이루셨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말하는 대로, 믿음대로 이루시는 분입니다.

 

2. 하나님과 완전한 관계 회복은 나와의 완전한 관계회복이다.

 나를 성공의 사람으로 바꾸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시편42:5하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지금 당장,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분명 낙심하게 하고 불안한 감정이 여전합니다.

낙심은 불안에서 옵니다.

걱정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옵니다.

염려는 마음이 나뉘게 만듭니다.

소망이 찾아오면 

그러나 이때 내 감정과 생각을 <바꾸면> 만사가 변합니다.

여기 놀라운 변화 법칙이 있습니다.

시편 저자는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Drive others Succeed, You'll succeed”

다른 사람의 성공비결을 배우면 당신도 성공하게 된다.

진정으로 <변화된 인생>을 살고 싶다면 그것을 먼저 이룬 사람들의 사고법을 배우면 된다.

우리는 시인을 통해 그가 어떻게 불안과 염려, 걱정을 극복할 수 있을까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연약한 나의 <생각DNA>를 <예수의 생각 DNA>로 바꾸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각으로 생각하는 법<사고방식>을 배우라.

 

위대한 인물에게는 목표가 있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소망이 있을 뿐이다.”(워싱턴 어빙

 

■ 말씀 나눔

1. 성격 유형감사를 해 보셨습니까? 어떤 유형입니까?

   고착화된 성격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자주 낙심하거나 근심하는 성격을 바꿀 수 있을까요?

   자주 흔들리는 마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3. 성경은 인생교과서입니다. 분명 당신의 문제에 대한 답을 제공해 줍니다. 

   성경이 말씀을 크게 외쳐보십시오.

   오늘 말씀에서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적용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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