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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과 들어가는 것

[明泉] 맑은 샘물 2023. 1. 20. 17:02

요3: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거듭난 사람만 볼 수 있는 나라 = 믿을 수 있는 나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우라들이 자주 쓰는 말 중에 ‘Seeing is believing.’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이 말은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과는 다른 말이다.  백번 말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한번 보는 것이 낫다.
그렇다. 내가 눈으로 똑똑히 보고 <확인>을 거쳐서 의심할 수 없는 <확신>이 설 때 <믿겠다>는 말이다.
눈으러 보아서 믿는 것이 있고, 안 보아도, 귀로만 듣고도 믿는 것이 있다.
진리는 그렇다.
진리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진리는 실체이다.
그러나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누가 진리, 그 실체를 눈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 실체를 알 수 있다.
눈으로 보아서가 아니라 "그의 말씀을 듣고 믿는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듣는다"(경청, 순종)은 곧 믿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아서 믿는 것이 아니다.
그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그를 믿게 되었다.
처음에 모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모세는 많은 기적들을 행하여 그가 하나님이 보내신 것을 증거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러 사건들을 보았고, 믿음이 생겼다.
그들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어도 모세가 하는 말을 믿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참으로 많은 기적을 경험을 했다.
그런데도 믿음이 약하여 지고 불평하고 원망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을 신뢰하고 따르도록 그들의 마음을 고치기 위해 불뱀을 사용하신다.
그들은 결국 "내가 틀리고 하나님은 언재나 옳다"는 것을 불뱀에 물려 죽음의 문턱에 갔다 와서야 깨닫는다.

늘 보아야만 믿느냐고

이처럼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고 믿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왔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고는 그런 일(니고데모가 듣고서 믿게 된 그 일들)을 아무라도 할 수 없다고 자신의 입으로 고백했다.
예수님은 마치 동문서답하듯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물을 필요도 없다.

그의 마음, 궁금증을 알고 계신다.

이런 장면이 복음서에 여러차례 나오는데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병행구절

같은 의미를 반복해서 설명한 것이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거듭나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듣을 때에 믿게 되었고, 또 그 믿음으로 들어가는 것을 약속으로 받았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우리는 영적인 세계를 보는 것 = 믿는 것 = 듣는 것(깨닫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듣는 것"은 "믿는 것"이며, 곧 영적으로 "보는 것"은 "들어가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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