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자존심을 세워라
에스라 8장 15~23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에스라는 고국으로 돌아올 준비를 합니다.
적어도 5개월을 수많은 민족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산과 강을 지나 긴 여행을 해야 합니다.
누구도 그들을 반갑다고 맞이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대부분 들이나 광야에서 노숙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불편한 것은 고사하고 언제 강도나 어려움이 닥칠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긴 종살이를 해야 했던 그들이 사병을 살 수는 없었습니다.
충분한 여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불편할 것이고, 문제점도 많을 것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해결책은 왕의 군대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아닥사스다 왕에게 예루살렘까지 가는 길을 호위해줄 군대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군대를 요청하면 아닥사스다 왕은 들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왕에게 떼를 쓰듯 부탁하는 것은 신앙의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습니다.
하지만, 차마 왕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은 "자존심"에 상처만 입을 뿐입니다.
그는 왕에게 이렇게 말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왕에게는 우리가 이미,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하나님이 잘 되도록 보살펴 주시지만,
하나님을 저버리는 자는 하나님의 큰 노여움을 피하지 못한다고 말한 바가 있어서,
우리가 돌아가는 길에 원수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
보병과 기병을 내어 달라는 말은 <부끄러워서> 차마 할 수 없었다.” (22절, 새번역)
영적 자존심을 세우려면
1.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사람(나는 누구인가?)
에스라는 영적으로 아주 철저한 사람이다.
영적 자존심이 강하고 분명함.
하나님을 믿는다고 이미 말해 놓고는,
상황이 급하다고 눈앞의 현실적인 것과 타협할 수 없었다.
이것은 "내가 누구인가"를 하나님 앞에서 증명하는 것이다.
때로 인간적으로 물질의 손해나
사람들 앞에서의 수치 또는 어려움을 겪을 지라도
심지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에 처할 수 있을지라도
믿음으로 고백한 것을 반드시 지키며 그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신앙이다.
영적 자존심 : ‘부끄러워했다’.
인간적인 도움 요청/ 믿음없음을 보여주는 것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1) 이처럼 자기가 믿음으로 한 말을 지키지 못하게 될지 모를 때 부끄러워할 줄 알게 하소서.
2) 상황이 힘들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며 넘어가지 말게 하소서.
3) 내가 믿음으로 말한 것을 지키지 못하게 될 때 부끄러워할 줄 알게 하소서.
4) 환경에 꺾이지 않는 믿음을 주소서.
5) 해결책, 대안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되게 하소서.
그러면서 자기 말을 지키기 위해 더욱 믿음으로 나아가는 영적 자존심이 필요하다.
이것이 신앙이고, 이것이 바로 영적 자존심이다.
2. 믿음대로 결단하고 행하는 사람(나는 무얼해야 하는가?)
결국 이때 에스라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가 말한 대로 하나님께 매달려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와주시기를 구하자"
에스라는 가장 강력한 조치로 다같이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하기를 선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23절)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무엘이 미디안과 싸우러 나아갈 때에 무기를 더 준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미스바에 모여 금식하며 간구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시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와 함께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할 때 부림의 역사가
전화위복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에스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금식기도가 며칠이 걸렸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그들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기도했다.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23절)
에스라는 확신이 들자 출발했고,
장장 5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아무 어려움도 당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한 손이 지켜주신 증거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불가능을 기도로 돌파하라.
살아가면서 직면하게 되는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경험해야 한다.
선한 손의 도우심을 경험하는 방법은 오직 강력한 금식 기도외에는 없다.
우리는 기도할 때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을 모두 내려놓자.
하나님이 응낙하시는 기도, 하나님이 확신을 주실 때까지 기도하자.
사실 나의 생각이나 확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비록 상황을 보면 좋은 결과를 확신할 수 없더라도,
믿기 힘들더라도,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믿으며 <기다리자>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기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아름다운 역사가 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도 일하시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시는 선한 손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도 함께 체험하게 된다.
이 얼마나 놀라운 간증인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결국은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1)나의 기도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깊이, 더 견고히 세우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2)에스라 혼자 기도하고 응낙을 얻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합심하여 기도했다.
서로 기도를 부탁하고 합심하여 기도하자.
그런데 우리가 정말 기도해야 할 것은 단지 <그 문제의 해결>이 아니다.
우리의 기도의 목적은 우리들 앞에 놓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에만 초점을 두어서는 안된다.
기도 응답은 부수적인 것이다.
그보다 먼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임재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분이시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가 세워지는 것을 원하신다.
3.나의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라(영적 승부수를 띄워라)
그러므로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다른 데 눈을 돌리거나
다른 방법을 찾지 말고
영적으로 승부를 걸어보십시오.
우리가 해야할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것도 있다.
이러한 것들을 모두 거부하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의 민족성이 "하자. 해보자, 할 수 있다" 그러면 무섭게 달려든다.
그런데 종종 기본마저 무시해 버린다.
지혜를 구하자. 분별력을 구하자. 통찰력을 구하자.
우직하고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가야 한다.
그렇다고 상식을 무시하고 몰상식하게 행동하라는 게 아니다.
현실적인 문제(질병)는 현실적인 방법(병원/약)을 사용해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직면한 상황이 그 일이 분명 영적인 것이라면
다른 방법을 찾지 말고 영적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기도에서 판가름 난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역사하시도록 영적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들의 기도 속에서 응낙하심을 받고, 행동하면 된다.
그 때에 하나님의 그 선한 손이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를 붙잡아주신다.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는 길을 인도해주시는 체험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