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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에드워드의 회심준비론(?) 주장에 대한 비판과 견해

[明泉] 맑은 샘물 2023. 1. 13. 00:18

미국의 청교도 목회자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아우구스티누스, 종교개혁자 칼빈 등과 더불어 세계 10대 신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거장이다.
미국의 영적 부흥과 1차 대각성 운동을 일으키며 미국 교회사에 한 획을 그었으며 그의 영향력은 워낙 커서 미국의 철학사에 영향을 미칠만큼 중요한 인물로도 자리매김하였다.
이러한 학문적인 탁월성으로 국내에서만 해도 그의 신학에 관한 논문이 450여개에 이른다.
그러나 조나단 에드워드의 설교(문장)만으로 보면 개혁신학의 관점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개혁신학은 회심에 관한 교리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로 회심을 얻는다."

<에드워드의 설교문>

구원 얻는 회심을 획득하는 길은 당신의 삶을 철저히 개혁하고 율법의 두 돌 판에 나타난 모든 의무를 다 행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찾는 것입니다.”(에드워즈생애와 사상 p250),
참된 회심에 이르는 길철저하게 여러분의 삶을 개혁하고 십계명의 두 돌판에 기록된 모든 의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에드워즈, 대표설교선집 p183),
회심을 위해 해야할 일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설교를 듣고, 예배에 출석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사람에 대한 공의와 자비를 행해야 합니다. 부모에 대한 의무, 형제와 자매에 대한 의무, 남편과 아내와 자녀에 대한 의무, 이웃에 대한 온유와 공의와 자비의 의무를 행해야 합니다.”(에드워즈, 대표설교선집 p183)
"구원얻는 회심을 획득하는 길"
"참된 회심에 이르는 길"
"회심을 위해 해야할 일"
철저히... 행해야
그에게 영향을 끼친 토마스 셰퍼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여기에서 문장의 앞부분을 강조되면서 동시에 뒷부분도 강조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앞부분은 약화시키고 뒷부분이 지나치게 강조하면 <회심준비론>이 되는 것이다.
1.“셰퍼드는 율법과 복음 둘 다를 전하는 것은 좋지만 복음만 전해서는 안 되며 차라리 율법을 먼저 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에드워즈 생애와 사상 p65).
2.“치료책(복음)을 설교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먼저 인간의 비참과 재난을 전해야’ 한다.” “셰퍼드가 볼 때,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주된 문제는 ‘깊은 겸비의 낮아짐’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비참을 느끼기 전에 은혜의 복음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목사들이 비참을 보여주기 전에 치유책을 먼저 보여주는 시대는 화있을 진저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위하여 율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자들을 주목해 보십시오. 조만간에 복음의 어떤 주된 사항들을 반대하게 되지 않는지 보십시오.”(에드워드 생애와 사상 p66).
셰퍼드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회심을 위해서는 "율법을 지키며 그것을 준수할 수 없는 비참한 상태에 있을 때에라야 진정한 복음을 깨달을 수 있다"는 주장은 마치 회심을 위해 필수 준비단계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만일 회심준비를 위해 전단계로 율법과 행위를 주장한다면 개혁신학에서 벗어난 주장이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회심체험에 대한 에드워즈가 내세운 증거들
에드워드가 회심체험의 증거로는 황홀경·실신·웃음·울음현상이다.
“회심의 명백한 패턴을 세 가지 기본 단계로 분류 할 수 있다.
전형적 체험은 (1) 죄에 대한 깨달음 즉 두려움이나 비참으로 느껴지는 죄에 대한 고통스런 감각으로 시작하여,
(2) 어떤 최저점에 떨어지게 되는데 그 지점에서 그 사람은 자신이 저주를 받아 합당하다는 것을 고백하며 심지어 구원에 대해 절망 할 수도 있다.
(3) 그런 다음 그는 용서 받은 죄들로 인한 기쁨으로 황홀경에 이르게 된다.”(에드워즈, 부흥론 p51).
“한번은 그녀가 동생에게 자기는 여러 날 밤낮을 계속 감당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황홀하게 맛보면서 즐겼다고 말했습니다.”(에드워즈, 부흥론 p254).
“이 모임에서 시작된 황홀경 체험 현상은 곧 주일예배로 퍼졌다. (주일 예배의 회중 속에서도) 비명에 가까운 울음이 나타나서 예배를 가득 채웠고, 어떤 사람들은 예배 후에 남아서 실신하여 황홀경을 맛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괴상한 전염병이 퍼지는 것 같이 기도하고 찬양하였다.”(George M. Marsden, Jonathan Edwards: A Life (New Haven,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3, 217-218).
“그래서 괴상한 울음들실신하는 등의 현상들이 방안에 가득해졌다.” George M. Marsden, Jonathan Edwards: A Life (New Haven,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3, 217). “이제는 기쁨과 놀라움으로 심장이 방망이질 쳤습니다. 또한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큰 소리로 울어 눈물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뒤범벅되었습니다.”(에드워즈, 부흥론 p229)

문제점

1.에드워드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회심을 위해서는 준비 단계로 율법적 의무를 다 행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야 한다"는 말에서 "철저히"라는 말은 행위가 우선적으로 전제 조건처럼 비춰진다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
2.살펴볼 것은 번역의 문제일까? 용어이 문제일까?
황홀경이라는 뜻은 영혼이 느끼는 표현할 수 없는 극락의 기쁨을 말한다.
성령으로 충만해 질 때 회개의 영과 방언, 그리고 에스겔처럼 별난 행동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3.이러한 신앙 감정(정서)이 성령에 의한 것인지, 사탄으로부터 온 것인지, 인본주의적인 주술에서 온 것인지 주의깊게 살펴서 분별해야 한다.
4.신학적인 전체 맥락에서 보지 않고 한 문장, 한 두 단어로 전체를 왜곡시키지는 말아야 한다.
5.번역에서 오해, 번역가가 저자의 의미를 오해해서 번역하면 우리의 정서와 신학에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들

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서에서 "괴상한 울음, 괴상한 실신 등" 다양한 현상이 모두가 성령의 역사인지, 악령 혹은 미혹의 영에 의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2. "신앙감정론"에서 참된 신앙인이 체험하는 성령의 역사와 그렇지 아니한 거짓 역사에 대해서 저술했던 에드워드 조차도 구분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비록 그가 위대한 신학적 저술을 했다해도
3. 왜냐하면 두 가지 - 성령의 역사와 악령의역사 - 가 동시에 한 장소에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4. 또한 그가 그러한 현상들을 그 일들이 있은 후에 점검하고 상담하고 분별했는지, 그 결과에 대한 분석은 없다.
5. 또 오늘날에 에드워드 시대에 역사하신 성령이 다양한 현상으로 나타날 때에 그러한 현상들에 대해 얼마나 비난과 비판들이 일어날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6. 성량의 역사나 악령의 역사를 목회자가 경험해 보지 못했거나 혹은 책으로만 배워서 알고 있다면 분별력이 없다면 상당한 오류와 잘못된 평가들이 난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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