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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구원 받는가? 깨달음으로 얻는가?

[明泉] 맑은 샘물 2022. 12. 29. 15:08

불교는 깨달음으로 해탈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깨달음은 <참 지식>을 알게 해준다.
그렇다고 저절로 새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요한복음18장 2절,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깨달음과 믿음의 관계

엄격하게 말해서, 복음을 <깨달음>은 진리의 실체를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 깨달음이 앎으로, 그 앎이 믿음으로, 그 믿음이 구원에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무조건 믿을 수는 없습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믿는 것은 맹신입니다.
그러나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한 쌍입니다.
알면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깨달음에서 그치는 사람이 있고, 앎에서 멈추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믿음을 통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십니다.
그런데 일부 거짓 유사종교에서는 믿음을 하나님께 매달리는 상태로 보기보다는 <죄 용서>의 확신을 갖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인격적 신뢰하기보다는 <어떤 진리: 죄 용서와 구원의 확신>를 깨닫는 것이 구원인것처럼 오인하게 합니다.
이러한 구원은 회심의 꽃이 없는 구원의 열매만을 얻으려는 무지의 소치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회심의 유형(Patterns of Conversion)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회심의 다양한 특징들

아거스틴 같은 성경말씀을 펼쳤을 때 진리의 빛이 그의 영혼에 비춰오는 감격으로, 루터(Luther)의 회심은 행위에 매여 율법적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깊은 죄책감으로부터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기쁘게 인식하고 깨닫는 것으로의 전환이었습니다.
쯔윙글리(Zwingli)는 율법의 속박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되는 행복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회심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칼빈(Calvin)의 회심은 거짓의 오류에서 오직 성경이 말씀하는 참 진리의 빛으로, 의심에서 확신으로 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회심에는 항상 전인격이 포함됩니다. 하지만, 회심은 사람에 따라 지성적이거나 의지적, 또는 감정적인 성격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나니아의 연대기와 예기치 못한 기쁨의 저자 영국의 C.S.Lewis 교수의 회심은 주로 지성적인 변화였습니다. 기독교 고전인 참회록의 저자 Augustine의 회심은 다분히 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의지적인 것이었습니다. 천로역정의 저자 John Bunyan의 회심은 죄에 대한 깊은 자각하고 돌이키는 감정적인 것이었다.

오직 구원은 믿음으로

이들 모두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신약성경에 믿음(피스티스/pistis)과 믿는다(피스튜에인/ pisteuein)은 대략 240번 사용되었습니다. <믿음>은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롬 10:9).

<믿음=영접>

믿음의 동격 언어는 영접입니다. 성육신 하셔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타내시 그리스도 예수를 인격적으로 내 안에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영접의 다른 표현은 연합입니다.
연합은 하나됨입니다.
영접하는 이유는 그분과 친교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교제하며, 친밀한 사귐을 통해 하늘 자원을 맛보며 사는 것입니다.
친구요 목자되시는 예수님과 날마다, 그리고 매순간마다 동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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