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죄용서와 구원, 그리고 해방'
바울의 죄용서와 구원, 그리고 해방
로마서는 한편의 논문처럼, 매우 놀랍게 전개됩니다.
그 가운데, 복음, 율법, 믿음, 죄, 하례(세례), 연합, 속죄, 칭의, 해방, 육적이스라엘-영적이스라엘, 산제사-영적예배, 믿음으로 산 사람들에 대해 마치 코스 요리처럼 푸짐하게 안겨줍니다.
죄용서, 그리고 구원과 해방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구원받은 신자의 특징
바울은 자신의 속사람과 지체(겉사람)을 구분합니다.
내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
그러나 내 지체 속에서는 <죄의 법>의 즐거워한다.
구원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그렇다. 한 사람이 거듭났다고 곧바로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아이가 태어난 것처럼 영적 사고방식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와 홍해를 건넌 후 자유, 해방, 구원을 받았지만 그들에게 육체의 습성이 남아 있었다.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은 후에도 그들에게 육체의 쓴뿌리가 남아있어 반역하였던 것처럼, 구원받은 신자가 하루 아침에 거룩해 지는 것은 아니다.
로마서 7장 21절,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그래서 영적으로 유아기에 있을 때(사도요한은 요한1서에서 신앙상태를 자녀들아, 아이들아, 청년들아, 아비들아로 구분하였다) 사람은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죄의 힘이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금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 이처럼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보내어 죄를 정결케 하시고 이제은 눙리가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 행하므로 율볍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셨다고 합니다.
롬 8장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의 생각 vs 영의 생각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우리 마음의 고지를 점령하려고 혈투를 벌이고 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인데,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되는 일 곧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려 하지도 않고 도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의 생각을 따르른 자들이 되어야 한다.
성령이 우리 안에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 계심을 알게 하신다. 그러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
죄를 행하는데, 그 죄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나를 사로잡아 죄를 실행하게 하는 실체는 나입니까?
<나>입니까? <죄>입니까?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믿는 신자 안에도 여전히 은밀한 죄의 잔재들은 숨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
구원받은 신자들의 상태는 가나안을 분배받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다. 가나안 땅은 이미 정복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손 안에 있다. 또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다. 그들이 좇아내기를 포기할 때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옆구리에 가시가 되어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사사기2장 "보김"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들 원주민(잔당들), 산에 거주하는 소수의 원주민 무리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그들은 세력을 얻어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입니다.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수복하고 나서 북한군을 둘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남쪽에 남아 있던 대다수 북한군은 태백산맥을 타고 북으로 갔지만, 가지 못하고 남아 있던 그들을 빨찌산이라합니다. 그들은 전라도 임실지역 지리산에 남아 있었습니다. 낮에는 한국군이, 밤에는 빨찌산 잔당들에 의해 주민들이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들을 토벌하기 위한 작전으로 그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괴로힐 것입니다.
그리고 남아있던 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폭동사건이 일어나 혼란에 빠지고, 자유와 완전한 해방을 누리지 못하게 되지요.
이와같이 신자들 안에 남아 있는 은밀한 대적들 - 육신과 관련된 것들로 육체의 정욕, 이생에 자랑, 안목의 정욕 - 이 남아 끊임없이 괴롭힙니다.
그러므로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을 꾀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에게까지 끊임없이 자라가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이지요.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내 속사람은 하나님을 즐거워하지만, 나(겉사람)는 곤고한 사람, 사망의 몸일 뿐입니다.
누가 나를 건져 낼 수 있을까요?
이처럼 육신은 죄의 법을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수도사가 되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수도사가 되어도 죄의 법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합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습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 놀라운 <구원, 해방>하시는 은혜가 예수 안에 있습니다.
예수가 주시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좇는 자에게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미 예수께서 우리의 대적 마귀를 십자가에서 소멸하셨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예수를 믿기 이전의 습성들, 육신에 속한 것들이 잔재로 남아 있습니다. 은혜의 통치(육신을 지배) 아래 머물러여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법을 따라 끊임없이 <죄의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르는 법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