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주의, 율법폐기주의의 원인과 치료제
제8장 (율법주의, 율법폐기주의) 원인과 치료제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무엇일까?
율법은 무슨 기능을 하는가?
그리스도를 믿은 후,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율법>은 더 이상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것인가?
구약, 신약성경에는 '율법주의'라는 말이 없다.
그러면 '율법주의'를 무슨 의미로 사용했는가가 중요하다.
그들의 주장에 대해 성경은 무어라 말하는가? 아니면 그들이 성경을 곡해한 것인가?
율법주의나 율법폐기주의를 무조건 비판하지 말고, 그들이 무엇을 잘못 사용하는 것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성경 본문의 <구절>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전후 문맥과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그들의 주장하는 논지가 성경과 부합하는지를 살펴 보아야 한다. 성경으로 검증해 보아야 한다.
율법주의 :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에도, 그리스도가 율법에 순종하셨음으로 여전히 율법준수는 유효하다.
율법폐기주의 : 그리스도가 성취하심으로 더 이상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
율법주의는 율법준수가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토대라는 주장이다.
율법을 행하라(율법준수)는 주장은 분명 성경의 주장은 아니다.
로마서 3장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갈라디아서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지켜야할 율법의 요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셨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그러면 '율법폐기주의'가 옳은가? 성경은 율법이 폐기되었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다. 그러면 율법을 지키라는 말인가? 버려도 된단 말인가?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복잡한듯 보이지만 또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율법주의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인간의 심리적인 문제가 문제이다. 인간 안에 있는 죄성이 문제이다. 아담처럼 하나님께 반역하려는 DNA가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은혜로 구원받은 것에 대한 감격이 사라지면 인간이 무언가를 보태려고 하는 욕망이 생깁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것입니다.
"그래도 내가 이 정도 지켰는데('의'로운데), 이 정도면 그래도 꽤 괜찮지 않나요?" 하는 태도이다.
또 하나는 "내가 행위로 무언가를 더 잘해서 칭찬받고 상급도 더 받을 수 있어"하는 태도입니다.
그리스도 없이 자신의 행위로 인정받으려는 심리적인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폐기주의는 이러한 율법주의 반동으로 등장합니다.
"그리스도가 다 이루셨기 때문에 내가 더 이상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어."라는 태도입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다 이루셨으므로 더 이상 내가 지킬 필요가 없다(?).
이 또한 그리스도의 은혜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얻은 신자는 무엇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은혜를 보답할 수 있단 말인가?
둘 다 위험한 발상이다.
율법폐기주의는 십계명의 ‘의무적인’(양심을 자극하는) 특징을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왜 율법폐기주의가 등장했을까? 율법주의에 반동에서 등장했다.
바울의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이신칭의 강조), 야고보서(행위의 믿음을 강조)
어거스틴( AD 354~430년)
종교개혁 1517년, 마르틴 루터(1483~1546)의 95개조 반박문(비텐베르크 성당)에서 출발
칼빈(1509~1564),
오웬(1616~1683) - 율법 순종(지킴 강조), 존 번연(1628~1688)
<매로우 논쟁>(1718년) : 구원의 확신
조나단 에드워드(1703년), 로이드존스(1899~1981)
먼저 18세기(현대 매로우 논쟁 당시)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율법의 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고는 성경적 관점이 아니다.
여러분은 '율법주의' 반대어가 '율법폐기주의'라고 생각하는가?
또 율법폐기주의나 율법주의가 서로의 해독제가 아니다.
율법주의와 율법페기주의의 반대어는 “은혜”이다.
율법주의 해독제는 은혜이다. 율법폐기주의 해독제도 "은혜"이다.
율법폐기주의자들은 율법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 그들도 역시 율법적인 마음을 지니고 있다.
율법주의의 진정한 치료제는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해하고 실제로 맛보는 것뿐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고 그것에 순종하려는 새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온다.
그리스도가 복음 안에서 그렇게 할 힘을 주신다.
이것만이 유일하게 율법주의와 율법폐기주의의 속박을 모두 깨뜨릴 유일한 치료제다.
가장 심한 율법주의와 율법폐기주의(믿음으로 완벽히 의로워진 사람은 율법을 지키고 선행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그 부패한 본성 속에 율법주의 깊이 박혀 있다)는 같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