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하여(3:22)
로마서 3장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δικαιοσύνη δὲ θεοῦ διὰ πίστεω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εἰς ⸀πάντας τοὺς πιστεύοντας, οὐ γάρ ἐστιν διαστολή.” (롬 3:22, BHSSBL)
원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어성경은 faith in Jesus Christ 로 번역함
“Even the righteousness of God which is by faith of Jesus Christ(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에 의하여) unto all and upon all them that believe: for there is no difference:” (롬 3:22, KJV)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본문을 원문으로 읽으면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래의 문장을 읽어보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하여”(3:22)
본문에 대한 해석(주격속격)에 따라 신학적인 주장이 달라진다. 왜 한글 번역은 목적격으로 해석했을까?
1. 바울의 어법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하여”로 표현하였는데, 이로써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의미 혹은 의도는 무엇인가?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신실한 순종》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우리)의 믿음》"을 지칭하는가?
왜 바울은 우리가 보기에 어색한 것처럼 보이는 문장으로 표현했을까?
하나씩 풀어 보자.
롬 3:21-26, 동일한 문단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방편으로 언급된 22절의 말씀에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통로는 무엇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22절, ‘믿음 - 그리스도’
26절, ‘믿음 - 예수’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사역인 《기독론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가?
아니면 우리를 구원하신 사건으로서 《구원론적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가?
2. 문장은 주격 속격이지만, 적용은 목적격 속격으로
롬 3:21-26의 중심 내용은 기독론에 두고 있다. 하지만, 문단 3:21-26의 전 내러티브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는 그리스도께서 신실하게 순종하신 사역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신실하심》을 의미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약속을 이행하신 행위를 더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의를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데, 그 의가 누구를 통해 우리에게 오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무엇인가?
1) 우리에게《의》곧 구원에 이르는 길,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계시하시고 알리신 분은 하나님이시다(21, 22절).
2) 또한 믿는 자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을 통해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 칭의>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24절).
3) 그리스도 예수를 공개적으로 화목제물을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시다(25a).
4)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신 분도 하나님 자신이시다(25b, 26a).
5) 예수 믿는 자는 누구나 <의롭다> 하시는 분도 또한 하나님이시다(26b).
이처럼 롬 3:21-26의 문단 전체 내러티브는 처음부터 끝까지《하나님의 신실성》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 -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믿음(주격 속격)을 우리에게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보이신 하나님의 의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의》얻게 되는 최종 대상은 믿는 우리들이다.
그러면 왜 바울은 마치 "예수의 믿음"을 말하는 것처럼 주격속격(기독론적)으로 기록하였을까? 이러한 문장을 사용한 의도는 없을까?
우리는 여기서 세 가지를 알게 된다.
첫째, 하나님의 신실하심.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의》를 계시하신 하나님의 실실하심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신실하심.
계시 중보자, 통로이신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이다.
셋째, 믿는 자의 신실함
이를 믿게 된 우리의 믿음 또한 신실하여야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바울의 의도가 있었다. 그리스도의 신실하심도 포함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이처럼 이 문장 전체의 흐름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서 시작된 구원을 주시는 《의와 믿음》은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신실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전달(전가)되어 우리가 신실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얻게 믿음’을 말하고 싶었다고 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는 본문에서 <주격 속격>이지만,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순종하신 것이 그리스도의 믿음을 나타내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믿음이라고 보기보다는 전달자로서 충실하심, 신실하심도 포함되고 그로 인하여 혜택을 우리는 최종 수혜자가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우리들에게 아버지의 의를 전달하시는 중보자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시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전가된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이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을 얻는다.
의의 창시자이신 하나님과 이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시는 그리스도, 그리고 이를 신실하게 수납하고 반응하고 우리의 온전한 신뢰, 곧 우리의《신실한 믿음》을 의미한다고 보면 큰 문제가 없으리라고 본다.
사도 바울은 한 문단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를 통해서 이를 믿게 되는 신자들에게 전가되는《의》를 믿게 됨을 연결시키고 있다.
즉,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자에게로 온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하나님의 의를 예수 그리스도가 순종하심으로 믿음을 얻었다는 표현은 분명 아니다. 또 그리스도가 가진 믿음이라는 표현도 부적절하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얻으신 믿음을 우리가 믿는다는 것도 맞지 않는다.
예수께서 순종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믿음을 취하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분도 아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그의 사역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구원(의롭다 함)은 무엇인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의》우리에게 전달해 주시는 '중보자이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를 우리가 믿어 의롭다 함을 얻게 된다. 여타 어떤 다른 길은 결코 없다는 표현을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하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참고
속격(屬格/Genitive)은 문장 안에서, 한 체언이 다른 체언을 수식하는 관형어의 역할을 가지고 있음을 표시하는 격을 말한다.
속격은 외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해석할 때에 보통 소유를 나타내는 '~의'라는 뜻을 가진다. 주로 소유의 의미를 표시하기 때문에 소유격(所有格, Possessive)이라고도 불린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체언을 수식하는'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를 사용해서 각각 관형격(冠形格), 연체격(連体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유격에 명사를 붙인 역할을 하는 소유대명사가 이를 대신하기도 한다.
속격의 격 표지 형태소는 체언 전후로 붙으나,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가 명사를 따라 굴절할 경우에는 형용사에도 속격 표지가 있을 수 있다.
사실 속격 안에 소유격이 속한다고 한다.
국어에는 주어적 속격이 있다.
주어적 속격이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통사적으로는 후행하는 명사를 꾸며 주는 속격이지만 의미적으로는 한 서술어의 주어 기능을 하는 격형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세월의 빠름이 살과 같구나!”에서
‘나의’, ‘세월의’가 주어적 속격의 예이다. 주어적 속격은 한 문장이 구의 형태를 취하여 다른 문장과 결합할 때 원래의 문장에서 주격이었던 형태가 속격 형태로 바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