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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꿈, 갈릴리의 꿈

[明泉] 맑은 샘물 2023. 12. 9. 14:56

갈릴리의 꿈 / 요한복음 21장 1~6절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2024년도 사역을 준비하면서 《주님이 꿈꾸신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과연 예수님의 꿈과 같은지, 또 어떤 교회공동체를 이루어 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묵상했던 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세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론에 관한 것입니다.

왜 교회는 존재하는가?
교회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시고자 하셨던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것은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제자훈련하시고, 공생애 사역으로 이루고자 하셨던 예수님의 꿈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오신 목적

예수님의 사역 중에 처음 외치셨던 그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메시아 사역의 핵심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은 제자훈련이었습니다. 또 제자 삼으라 하셨습니다. 그 제자훈련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하늘로 울리우시기 전 세상을 떠나시며 마지막 부탁하신 말씀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잃어버린 양을 찾아 전도하는 교회"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꿈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꿈은 하나님 나라를 꿈꾸시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복음전도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오셔서 복음을 전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과연 하나님 나라의 꿈을 알 수 있었을까요?
그 꿈을 시작한 곳이 갈릴리입니다.
눅 1: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Ναζαρέτ)이란 동네에 가서'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마 2:23)
어원론적으로 볼 때 나사렛이란 이름과 메시아의 칭호인 “넷제르(가지)”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히브리어로 가지는 '넷제르'(참조, 사 11:1; 렘 23:5; 33:15; 슥 3:8; 5:12; 계 5:5; 22:16).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넷제르, נצר)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 11:1)
*
나사렛(Ναζαρέτ, נָצְרַת الناصرة) : 이스라엘의 북부에 위치한 갈릴리(Galilee)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


나사렛은 사람들이 무시하던 그런 동네입니다. 선지자가 나올 만한 곳이 못 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요 1:46)
막달라라는 마을도 옆에 있었습니다.

막달라(Μάγδαλα, Magdala)는 갈릴리 호수의 고대도시이며 티베리아스에서 북쪽으로 3마일(4.8킬로미터) 정도에 위치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무시당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그런 곳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곳에서 성장하셨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은 거기서 하나님의 구원의 드라마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복음을 전하는 일을 최우선 두고 사역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꿈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  영혼들을 다시 세우는 교회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역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 그의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완전한 실패
처럼 보였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있을 수 없었고, 떠났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실의와 낙심하며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사역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정말 실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일찍이 예수님을 찾아가 신앙상담을 했던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물질적으로나 그들의 지위나 위치는 예수를 추종한 제자라는 낙인으로 불편함과 상당한 손해와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당당하게 세상과 맞섰고, 끝까지 그리스도의 제자로 남아 예수님을 위해 자신들을 드렸습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네고데모와 같은 숨은 제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지상생애의 마지막 장례식을 치른 사람들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누구였는가?
마태는 그가 부자였다고, 마가는 요셉이 유대 산헤드린에서 존경받는 공회의원이었으며(막 15:43), 누가는 그가 예수에 대한 의회의 결정에 찬동하지 않았다고 했으며, 사도 요한은 요셉이 예수의 숨은 제자였다(요 19:38)고 말한다.
이로써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한 4 복음서에 소개된 유력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예수의 시신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가서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시신을 수습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총독 빌라도 조차도 그를 무시할 수 없는 권위
가 있었다. 그의 요청에 빌라도는 허락했고, 해가 지기 전 십자가에서 내려 급히 세마포를 준비하여 장례를 하는데, 갑자기 무덤이 필요했다.
그는 자기를 위해 만든 무덤을 예수님께 기꺼이 드린 사람이다
. 또 니고데모는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례 할 때에 향유를 백 근쯤 가져와 예수를 장례하는 일을 위해 헌신했다. 이 일은 그에게 상당히 불이익을 당하고 왕따 당할 수 있는 행위였다. 하지만 그는 주님을 위해 헌신했다.

이들은 예수님의 생애에 숨은 보배들입니다.
교회를 위해, 이런 건강한 헌신하는 일꾼들이 세워지는 꿈이 있습니다.
또 실패한 제자들, 좌절과 낙심 속에 고향으로 돌아간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다시 찾아오셔서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다시 사명을 주시고 세워주셨습니다.
제자사역도 늘 성공적으로 마쳐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역에 가장 중요한 인물들은 갈릴리로 돌아간 《제자들》입니다.
3년 전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았을 때 그들은 청운의 꿈을 가지고 따랐습니다.
나름 하층민에서 일약 영적인 지도자가 되는 수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그래도 사람들에게 나름 존경받을 자신들을 생각하며 미래를 꿈꾸고 설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3년의 세월이 지나 빈손으로 다시 갈릴리 어부로 되돌아왔습니다.
누구도 환영해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지난 3년의 세월 동안 그들의 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도리어 예수 시신을 훔쳐간 시체유시범들이라는 수배까지 당했습니다.
다시는 예루살렘에 돌아갈 수 없던 제자들, 그들은 그들이 기대하고 꿈꾸었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고, 빈 손으로 돌아와 다시 그물을 잡은 자신들의 손을 보며 한없이 원망하고, 자책은 더욱 그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렸습니다.
그들은 끝이라 여겼어도, 주님의 꿈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밤에서 새벽으로 바뀌던 갈릴리 바다, 비록 간밤에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허탈과 죄절 속에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실패자요, 배신자요, 부끄러움으로 점철된 그들은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들은 놀라운 기적을 경험합니다.
그 기적은 무너졌던 제자들을 다시 세우시며, 다시 제자로 회복시켜 주시는 주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이 꿈꾸셨던 갈릴리의 꿈》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하는 교회는 세상에서, 세상적으로, 실패한 사람들, 좌절하고 넘어지고 곤고한 사람들을 다시 세우는 곳입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 나라를 꿈꾸게 만드는 곳입니다.
영적 날개를 달아주는 곳입니다.
교회는 영적 회복, 다시 세우는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초대교회의 일꾼들이 되었듯이 우리는 사람을 세우는 일을 쉬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초대교회와 같은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지금도 성령님은 교회에 한없는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교회로 하여금 다양한 은사들을 가지고 세상과 영혼을 섬기게 하십니다.
그래서 초대교회가 모이기를 힘쓰고 떡을 떼고 교제하며 기도하고, 예수는 그리스도라 증거하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공동체가 되었던 것도 성령 충만으로 가능했습니다.
교회의 사역은 성령 충만으로만 가능합니다. 성령이 묶어 주시지 않으면 사교집단으로 전락하고, 인간이 인정받으려고 하는 모임이 됩니다.
교회의 분쟁은 모두 성령의 역사가 사자질 때 생겨납니다.
교회의 우선순위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영적인 교제와 사귐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무너지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상처 입은 심령을 세우는 공동체요, 가르치고 치유하고, 사랑으로 돌보는 공동체로 주님의 사역을 계승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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