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하나님 형상의 좌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개념의 어원
히브리어 성경 원문에는 접속사 없이 형상(첼렘) 모양(데무트)은 나란히 나온다(우리의 형상, 우리의 모양)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로마 카톨릭의 견해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구별해서 이해하는 것이다.
'형상'과 '모양'은 동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두 개의 다른 실체를 가리키지 않는다.
칼빈은 루터와 같이 '형상'과 '모양'을 구분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형상, 우리의 전존재
하나님의 형상은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 모양을 만드시기로 작정하시고,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시었다.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곳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의 형상》의 좌소(座所)는 인간의 영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영혼에만 국한되어있다는 말은 아니다.
인간의 육체도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한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세계 또한 하나님의 솜씨와 능력을 반영하듯, 인간 전존재가 하나님의 형상임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육체와 분리된 영혼의 구원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 몸 전부, 전존재의 구원이다.
이처럼 성경이 말하는 인간론은 우리말의 ‘영혼’이란 개념과 다르다.
구약성경에서 נֶפֶשׁ (네페쉬)는 한 개별적인 존재자 자체를 가리킨다.
시편에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찬양하는 사람의 온 존재를 가리킨다.
마치 유체이탈 현상처럼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다는 이원론적인 인식은 히브리어 נֶפֶשׁ (네페쉬)에는 찾아볼 수 없다.
영혼,
영혼, נֶפֶשׁ (네페쉬)
히브리어 נֶפֶשׁ (네페쉬)는 영혼이라기보다는 '생명체 자체', ‘생명, 생물(物)’로 번역했다.
즉, 생명체는 생명+몸으로 구성된 것을 말한다. 성경은 사람을 히브리어로는 נֶפֶשׁ חַיָּה(네페쉬 하야)로 창조되었다(창 2:7). (하야)' 동사는 '살아있다/살아가다'란 뜻이다. 질병에서 고침을 받아 살아날 때도 동일한 단어를 사용한다.
우리말로 ‘영혼(靈魂)’이라고 번역한 נֶפֶשׁ(네페쉬)는 본래 '목, 목구멍'이란 뜻으로 목구멍은 숨이 들락날락하는 통로이다. 사람의 목구멍에는 특별히 하나님의 ‘숨, 생기, 생명의 기운, 입김, 생명의 숨’(נְשָׁמָה 너샤마)이 들락거린다는 말이다(창 2:7).
숨이 머지면 생명도 끝난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은 ‘생령’, 새 번역과 카톨릭역은 ‘생명체’로, 공동번역은 의역하여 ‘숨을 쉬게 되었다’라고 각각 번역했다.
종종 개역과 새번역은 ‘영혼(soul)’, 공동번역은 ‘마음’으로 번역하기도 한다(시 146:1).
우리가 쓰는 영혼은 영(靈)과 혼백(魂魄)의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한 개념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영과 혼백은 엄밀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넓은 의미에서 영혼의 동의어로 '넋, 혼, 영, 혼령, 혼백 등'이 쓰인다.
영혼의 기능
영혼( נֶפֶשׁ,네페쉬)은 두 가지 기능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철학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성(Verstand)은 '사물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오성은 일반적으로 지성, 지력, 논리적 사고능력(思考能力)을 말한다.
하나는 오성(understanding)이고, 또 하나는 의지(will)이다.
먼저, 오성(이해력, 분별력)의 임무는 오성이 선하다고 하는 것은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거절하는 것을 구별하는 능력이다.
또 의지는 오성이 구별한 것을 행동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영혼(오성과 의지)의 탁월성을 가진 존재로 지어주셨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타락할 때 하나님의 형상(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과 그것을 행할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 '상실(喪失, loss)'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대상과의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는 것,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박탈당함
하나님 형상의 회복
타락 후의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을 의미한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죄하고 타락하였을 때 하나님 형상을 상실(무능, 불능)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하시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 형상을 회복해 가게 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는 하나님의 형상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해된다.
히브리서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οs ων απανΥασμα τηs δοεη και χαρακτηρ τηs υποστασεωs αντου)
여기서 "이는 = 그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고후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과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την αυτην εικονα μεταμορφουμεθα)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변화하다"는 현재형 동사
여기서 신자는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해야 한다. 변화하는 자체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계속적으로 지속되어야 한다.
여기서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일, 새 사람되는 역사는 성령의 역사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타락 후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논쟁들
타락 후에 《인간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형상은 보존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역사적으로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칼빈은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었다, 없어졌다, 부패되었다'는 표현으로 설명한다.
이는 타락에 의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전적으로 사라진 것(annihilation)이 아니라 무서우리만치 그 형체가 알아보기 보기 힘들었다(deformed)고 말한다.
다른 곳에서는 어느 정도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 안에 남아 있는 자취를 보게 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자취라는 말은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residue) 혹은 잔여물(remnant)이라 부른다.
칼빈은 시편 8편 5절을 주석하면서 타락한 후에도 인간에게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이성, 인간 속에 숨겨진 종교의 원리, 인간의 상호교제, 죄책에 대한 수치심, 법에 대한 순종심 등》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진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칼빈은 하나님 형상의 본질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회복된 것을 역으로 추적하여 《형상의 본질》을 이해한다.
그는 바울서신의 골로새서 3:10과 에배소서 4:24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은 참된 《의와 거룩》에 있다고 봤다.
전자는 십계명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설정한 후반부를 말하며, 후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은 《거룩성과 도덕성》에 있다.
칼빈은 거룩성과 도덕성은 서로 구분되는 개념이지만, 분리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했다. 둘의 관계성은 부분과 전체 혹은 전체와 부분의 관계성이다.
칼빈은 말하기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되는 거룩성과 도덕성이 형상의 본질이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형상은 "정신의 빛 아래서, 순수한 마음 안에서, 모든 건강한 각 기관들 안에서"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죄로부터 구원하사 하나님 이버지와 교제하게 하심으로 우리의 영혼이 구속함을 얻었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에는 지식(혹은 진리)과 의와 거룩함이라는 하나님의 형상의 정수가 새겨져 있다(골 3:10; 엡 4:24).
하나님의 형상 곧 영원하신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생명’이 곧 ‘사람들의 빛’(요 1:4)이었다는 사실로부터 확증된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영혼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시고, 아버지를 아는 지식과 사랑하는 마음을 주사 그를 다시금 경배하고 찬양하게 하셨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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