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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율법과 복음을 아는가?

[明泉] 맑은 샘물 2023. 10. 23. 18:15

구원은 삼위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죄인을 용서하시는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의 은혜, 그리고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구원》을 얻었는데,
왜 율법이 필요한가?
복음(=예수 그리스도)으로 구원을 얻었다면 더 이상 율법의 정죄와 심판에서 구원을 얻었는데,
왜 율법이 필요한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더 이상 율법이 필요 없지 않은가?
율법은 폐기가 마땅하지 않은가?

율법폐기론

"율법폐기주의"를 간단히 정의하자면, 그리스도인(구원받은 신자)의 삶 속에서 《율법의 역할》은 끝났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율법이 더 이상 신자의 삶에 필요 없는 것으로 율법에 관한 모든 것을 전면 부인한다.
율법폐기주의를 주장하는 데 사용되는 성경구절은 (다소 역설적이게도) 로마서 6장 14절이다.
"너희가 법(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그런데,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은 율법이 신자를 위한 행위의 언약은 아니지만 삶의 규칙으로서 계속해서 기능한다고 가르쳤다.

왜 구원받은 신자에게 여전히 율법이 필요할까?

그 이유는 율법이 하나님을 이해하게 해 주고, 우리의 구원의 신비와 탁월함을 이해하게 해 주며, 하나님의 뜻이 율법 안에서 찬란하게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불신자들에게는 심판의 경고를, 또 믿는 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복음의 빛 아래서 율법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긍휼, 용서, 사랑과 은총, 그의 성품과 구원하시는 가슴저미는 놀라운 계획을 이해하게 해 준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모든 '율법폐기주의자'가 주장하는 것들이 다 똑같은 것은 않다는 것이다.
율법폐기주의의 시각을 갖고서도 경건한 삶을 산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는 주의 종들이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한다는 사도의 명령을 기억해야 한다.
주의 종들은 단순히 말에 관해 지나치게 트집을 잡지 말아야 한다.
또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정중하게 행동하고 말해야 한다.
이번에도 로버트 트레일에게서 지혜로운 조언을 들어보자.

서로에 관한 말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말자.
다툼의 한복판에는 거짓된 말이 많이 오가고, 사람들은 성급하게 그것을 믿는다.
이것은 다툼의 열매인 동시에 연료다.
율법폐기주의에 관한 온갖 소음에 대해 분명히 말하건대, 나는 런던의 율법폐기주의자 목회자나 신자 중에서 정말로 비판자들이 묘사했거나 루터와 칼뱅 같은 사람들이 글로 비판한 것과 같은 사람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들에게 물어볼 기회도 있고 물어볼 의향도 있다
.)

율법폐기주의는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교리적 율법폐기주의

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율법이 완전히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있었다.
존 솔트마시, 존 이턴(John Eaton), 토비아스 크리스프 같은 영국의 신학자들이다. 이들은 신자 안에 《성령의 내주하심》 때문에 율법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우리의 구원을 위해 절대적으로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은 맞다.
하지만, 성령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우리의 죄에 대해 각성시키는데 사용하신다.


율법폐기주의 《문제점》

왜 율법을 폐기하지 말아야 하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율법이 아니면》 우리의 죄를 구체적으로 깨닫지 못한다.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하나님의 거룩과 그의 심판의 정당성 등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올바르게 깨닫지 못한다.  

율법은 2가지 기능을 한다.
첫째는 적극적으로는 《정죄의 기능》이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발한다.
둘째는 소극적으로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죄의 확장 억제)》는 것을 깨달으며, 영적으로 죄를 멀리하도록 각성하게 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철저하게 인간의 노력이나 애씀이 구원하는데 0.1%도 도움이 안 된다.
인간 존재(속사람) 자체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 속사람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새롭게 하셔서 하나님의 거룩에로 나아가게 하신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구원해 주는 방편이 아닐지라도 우리로 하나님을 정확히 알아가는데 율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율법은 《폐기》가 아니라 《완성》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공의와 의를 보여준다.
복음은 그것을 그리스도가 어떻게 완성하고 성취하였는지 알게 해 준다.
그러므로 여전히 율법은 그리스도인이 거룩을 추구하고 의롭게 되고, 왜 우리가 그리스도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알도록 안내해 준다.
마치 《여권》이 있어야 《비자발급》을 받게 되고, 출입국이 허락된다.
율법(여권)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얻는 믿음(비자)을 가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율법(여권)이 없었다면 구원(천국가는 일)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권(율법)이 없다면 비자(구원 얻는 믿음) 발급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 입국한 뒤에도 여권(율법)이 유효하고 필요하다.
나의 신분을 밝혀 준다.
내가 죄인이었음, 또 그 죄를 복음으로 용서받음
우리는 율법과 복음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는지 확신하게 해 준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의 탁월함을 보여준다.

성경해석상의 율법 폐기주의

교리적 형태 외에도(하지만 교리적 형태와 밀접하게 관련된 엄밀한 의미에서의 율법폐기주의는 특정한 성서 해석 관점으로 옹호되었다.
이런 관점으로 보는 사람들은 웨스트민스터 총회 신학자들의 입장을 비롯해, 율법이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 하나(도덕)는 지금도 계속해서 기능하고 있다는 입장이 모두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한 것(imposition)이라고 주장했다.
율법을 셋으로 구분(지금은 성취되어 폐기되었다고 보는 의식법=제사법, 지금도 통용된다고 보는 시민법, 도덕법)하는 분류법은 종교 개혁 시대를 넘어 최소한 토머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에게 율법은 그냥 하나의 법전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율법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나와"(롬 7:12, 14)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능가, 대치, 완성》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은 그림자요, 모형이었다. 율법은 오실 그리스도가 성취하실 것을 예고한다.

(김세윤, [요한복음 강해], 두란노, 69-90)

하나님 아들, 그리스의 오심으로 하나님의 뜻이 완성되고, 구약의 예언의 성취(fulfillment) 요, 유대교를 능가(supersession)했다.
여기서 통상 성취는 구약의 불완전한 제사방식을 극복하고, 완전한 속죄제사를 이루어 완전한 《구원의 성취》로 본다.
히브리서 저자가 레위, 제사, 절기 등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될 것을 보여주는 모형론으로 설명한다.
즉, 제사가 보여주려 했던 것은 하나님과 완전한 화목을 통한 구원인데, 제사는 그림자였다.
예수는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의 완성이시다. 예수는 구약과 유대교를 대치(replacement)한 것으로 본다.
즉, 완성-능가-대치 구조는 신약전체의 구조이다. (김세윤 p. 69)

완성, 능가, 대치로 구약과 율법이 불필요한가?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성경은 점진적 계시의 역사이다.
구약은 희미한 불빛처럼 어둠이 먼동이 트면서 점점 밝아지는 아침과 신약은 한낮처럼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완성되고, 성취되고, 대치되었다.
하나님은 밤과 낮을 지으셨다.
하루는 밤과 낮으로 구성된다.
밤(율법)은 낮(복음)을 더욱 빛나게 해 준다.
밤(율법)은 나무(신자)가 《성장하는 시간》이다.
낮(복음)은 나무가(신자)가《열매를 맺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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