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신앙교육서 29. 성찬의 신비 - 보여진 그리스도의 말씀
칼빈이 종교개혁을 했을 당시에 성찬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고 있었다.
첫째는 로마카톨릭은 화체설
사제가 “이것은 내 몸이라” (hoc est corpus meum)는 예전문을 낭독할 때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고 로마 교회는 말한다.
둘째는 루터의 공재설
루터는 화체설(transsubstantiation)을 거부하고 그것을 공재설(consubstantiation)로 대체했다. 루터에 의하면, 떡과 포도주는 아무런 변화가 없이 남아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찬에는 떡과 포도주 안에, 그리고 그 아래,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몸과 피를 포함하는 그리스도의 전인격이 신비스럽고 기적적인 방법으로 임재한다고 한다.
셋째는 쯔빙글리의 기념설
그는 성찬이란 하나의 표징 또는 상징으로서, 영적인 진리와 복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상징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상징들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단순하게 기념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고백의 표(badge)에 지나지 않는다고 가르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저서에는, 보다 깊은 성찬의 의미를 전달하고 성찬을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위하여 하시는 일에 대한 인 또는 보증(pledge)으로 간주하고 있는 내용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육체적으로 성찬시에 임재 하신다는 사실은 부인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신자의 믿음에 임재 하신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다만 그의 신성으로만, 그리고 성찬에 참여한 신자들의 이해에만 임재하실 뿐이다.
넷째는 칼빈의 영적 임재설
신자가 성찬에서 빵과 포도주를 받을 때 생명을 주는 감화를 그에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이 감화는 실재적인 것이면서도,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이며 신비적이요, 성령을 매개로 하여 전달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적으로 받는 믿음의 행위를 조건으로 하여 전달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와의 친교(communio)를 가능케 하는 방식은 두 가지로 표현된다. 한편으로는 수찬자가 믿음을 통하여 자신이 마음을 그리스도께서 계신 하늘로 들어올리는 것으로 표현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령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감화를 수찬자에게 내리는 것으로 표현된다.
성찬의 신비
신비에 찬 성찬에 주어진 약속을 인식할 때 우리는 이 성찬이 무슨 목적으로 제정되었으며 어떤 방향을 지향하는가를 알 수 있다.
즉, 우리가 이 성찬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유일회적唯一回的)으로 우리를 위해서 주신 《주님의 몸》이 지금 현재 우리의 것이요, 장차 영원히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떡과 즙이 이 성찬의 표지인 바 주님께서는 이 표지를 통해서 그의 몸과 피를 참으로, 그러나 영적으로 받게 하신다.
성찬은 살아계신 주님과의 교제
그러나 이 교제는 영적인 교제로 만족한다.
이는 결코 떡과 즙의 형식 밑에 진정한 주님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이 지상에서 아직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이 지상의 삶을 끝내시고 하늘로 승귀하셨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주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자
신을 허락하시어 교제케 하시기 위해서 전혀 거리감이 없으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찬에서 이 교제의 사실을 아주 분명히 교훈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이 그의 모든 풍요로운 것들과 더불어 우리
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그때 우리는 그를 눈으로 보는 듯하며 손으로 만지는 듯하다.
성찬은 주님의 영적 임재이다.
주님의 영적 임재는 그렇게도 강하고 효과적이어서 그는 우리에게 영생에 대한 확신과 부활체의 영생을 확실히 해 주신다. 사실 우리의 육신은 이미 그리스도의 영원한 부활체에 의하여 이미 소생함을 얻었고, 어떤 방식으로 그의 영생과 교통하게 되었다.
그래서 떡과 즙의 형식으로 주님의 몸과 피가 우리에게 주어지는데, 그 목적은 우리가 그것이 우리의 것이요, 우리를 위한 생명과 영양이라는 사
실을 알기 위함이다.
이런 까닭에 이 떡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봉헌될 때
우리는 즉시 다음의 비유를 생각해야 한다.
즉, 우리의 몸이 떡을 먹음으로 영양분을 공급받고 생명을 지탱하며 보존될 수 있듯이, 우리의 영적인 삶은 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삶을 영위한다.
만약에 포도주가 피의 표지로 우리에게 제공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영적으로 받아 우리의 영적인 삶을 윤택케 한다.
영적 양식
이제 이 신비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풍성한 자비를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치 않는 사람들이 되지 말고 찬송과 감사로 이 신비를 높여야 할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가서 이 성찬은 한 몸에 속한 자들의 결속을 일으키며 피차 용납하여 일치와 화합에 이르게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쾌히 내어주심으로 우리도 그의 모범을 따라 우리 자신들을 이웃을 위하여 내어주어야 하는 사실보다 더 우리들 사이의 《상호간의 사랑》을 자극하는 것은 없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공유하도록 허락하셨듯이. 그는 자기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되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