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을 사모함과 안식에 들어감
1. 어떻게 인간 안에 영원에 대한 사모함이 생겼을까?
솔로몬은 전도서 3:11에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영원》은 피조물인 인간이 본래 지음 받을 때부터 자동적으로 소유했었던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영원은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안식》도 마찬지로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안식 곧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내 안식》이라 하셨습니다.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들어가고 말고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히브리서 4장,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4 제칠 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 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5 또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영원과 안식은 하나님이 그의 안식에 들어오도록 허락해 주실 때에 가능합니다.
안식일은 그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시고 구별하시며 복을 주셨습니다.
창 2장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이와 같이 《영원, 안식》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곳에 들어올 자를 선택할 권한도 하나님께 있고, 또 그것을 알게 하실 권한도 하나님께 있으며, 또 그 영원과 안식을 누릴 수 있음을 기대하도록 허락하심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우리말 성경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라는 번역 하였는데, 원문에는 ‘영원을 그들의 마음속에 (심어) 주셨다’는 뜻이다. 여기서 ‘주다’는 히브리어는 ‘나탄’인데, ‘허락하다’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의 마음에 영원을 사모하도록 새겨 놓으셨습니다.
단지, 영원을 인식(알게 하심)하는 것만이 아니라 영원을 소유하게 하시려고 《마음을 심어 주셨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2. 그러면 어떻게 "영원 안식"누리게 되는가?
하나님의 초대와 믿음의 반응
히브리서 4장에 "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믿지 아니하면 그에게는 영원한 안식은 이미 물 건너간 것입니다.
하나님이 맹세하셨습니다.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의 성품의 특징을 이같이 설명했습니다.
‘오직(그러나)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엡 4:23-24).
그것은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에 합당한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완고하고 딱딱한 마음, 돌 같은 심령에는 은혜가 들어가지 못합니다. 고의로 믿지 않는 어리석음, 자기 이성으로 옳으니 틀리니 판단하는 이성으로는 《영원과 안식》을 알 수 없습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려면 겸손한 마음이며, 들으려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어떤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마음(심령= 마음에 있는 영)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마음을 갖는 것도 우리의 노력이나 애씀, 수양이 아닙니다.
우리가 《새사람으로 옷》을 입어야 합니다.
내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야 합니다.
그것을 주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의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3. 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와 진리가 되십니까?
첫 번째, 의란 무엇입니까?
세상적인 의로움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의는 하나님 앞에 서는 조건입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서 감히 "나는 의롭고, 또 의인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누구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러한 죄인이기에 의롭게 되지 않고는 의로우신 하나님을 알현할 수 없습니다.
누가 "너는 이제 죄 없다"라고 하나님 앞에서 변호하며 선언해 줍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의 피가 우리 죄를 씻어 《의롭다 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 매여 있을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거룩해지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거룩해지는 비결을 인간이 고안해 낼 수 있는 것입니까?
거룩함에 이르는 비결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말씀 곧 진리의 말씀》입니다.
바로 그 《진리로 거룩함》에 이릅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오직 진리뿐입니다.
진리는 우리를 거룩함에로 이끕니다.
오직 하나님만 거룩하신데,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우리 자신도 거룩해져야만 합니다.
우리를 의롭고, 거룩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구속하심)'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죄를 씻어 우리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합니다.
그러므로 진리이신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정결하게 한다는 이 진리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끕니다.
요한복음 12:32 "나 곧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리라" 하시니라.
예수는 우리의 의와 진리가 되십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먼저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해 달라고 간청하라.
'주여! 나의 심령을 새롭게 하옵소서.'
바울은 이것이 딱 한 번만 입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입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입으라는 말은 《"네가 널 위해 입으라"》(중간태)는 의미입니다.
계속해서 그리스도 예수로 옷 입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참고. "입으라"(G1746: ἐνδύω엔뒤오 enduo-). 옷을 입히다, 옷을 입다. '옷 속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옷을 입히다. 옷을 입다'를 의미한다.
① 입다(마 6:25; 마 22:11; 마 27:31; 막 1:6; 막 6:9; 눅 12:22; 행 12:21; 롬 13:12; 고전 15:53-54; 고후 5:3; 엡 4:24; 엡 6:11; 골 3:10; 골 3:12; 계 19:14)② 입히다(막 15:17; 막 15:20; 눅 15:22)③ 입히우다(눅 24:49)④ 옷 입다(롬 13:14; 갈 3:27; 계 1:13; 계 15:6)⑤ 붙이다(엡 6:14; 살전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