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함, 그 비밀을 누가 알려 주겠는가?(1) 인문학
도덕형이상학(道德形而上學)
칸트의 궁극적인 관심사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우리에게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철학 명제로 잘 알려진 그는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 ~1804)는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았다.
그의 철학의 관심은 도대체 《인간은 무엇인가?》였다. 이 물음에는 이미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는 형식적 규정이 전제되어 있다. 칸트가 규명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에 대한 보다 실질적인 규정이었다.
1) 나는 무엇을 인식할 수 있는가?(순수이성비판)
2)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실천이성비판)
3)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괜찮은가?(미적 판단력 비판)
그의 첫번째 작품인《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은 1781년 초판 출간, 1787년 재판 출간으로 철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금자탑이 놓게 되었다.
간략한 철학사
우주의 기원, 만물의 기원을 찾으려는 노력
고대 히랍철학자들은 자연에 관심을 갖었다.
그들은 자연의 신비에, 경이감을 가지면서 파고들어
마침내 자연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을 찾아내려 하였는데,
바로 더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알갱이 곧 <원자>라고 했다.
인간사에 관심
결국 만물이 물질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을 때 그러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소피스트들의 등장으로 인간의 삶에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도덕적인 인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에 화두 - "너 자신을 알라" - 를 던진 인물이 저 유명한 소크라테스이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에 의해 남겨진 것 외에 저술을 남긴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철학애서 인간에게로 관심을 돌려 놓은 인물이다. 그는 서양철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치면서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논쟁이 벌어지고
이를 이분법적으로 보려는 플라톤과 하나로 보려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철학》이라는 지평이 활짝 열리고,
체계화 되었다.
이후로 이후 기독교 역사와 함께 서양 역사가 기록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영향력을 끼쳤다.
초대교회의 교부이며, 로마가 고트족에 의해 로마가 약탈당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아우구스티누스
그의 『하나님의 도성』은 서양 사상사의 획기적인 작품들 중의 하나이다.
그의 사상은 중세철학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중세역사를 암흑기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중세 역시 귀중한 유산이 있고, 인간이 만든 역사이다.
중세라는 천년의 시간 속에 철학은 결코 잠자지 않았다.
토마스 아퀴나스를 통해 『신학대전』이라는 대작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여는 르네상스를 거쳐 종교개혁과 함께 복고주의는 다시금 철학에 눈을 뜨게 하였고,
인간의 이성에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계몽주의가 꽃을 피게 만든 철학자는 바로 임마누엘 칸트이다.
과연 인간의 이성은 믿을 만한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인간의 이성은 과연 신뢰할만 한가?
이것이 나의 대학시절에 고민하개 해 주었던 질문이다.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하겠다는 데모가 한창일 때 대학 초년생이었다.
그저 학교와 집 외에 다른데 눈을 돌릴 시간이 없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도서관이 취업을 위한 공부방과 과제실, 강의실로 그렇게 시간을 아끼며 생활하다가
철학서적을 읽으면서 강의를 듣게 되었고,
철학을 떠나 인간이 학문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철학에 대한 이해, 길라잡이를 만들어 주었다.
물질세계 곧 자연세계에 대한 학문을 형이하학이라 한다.
그리고 정신, 신의 존재, 영적 영역을 형이상학이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물인 Metaphysics를 번역한 것이 '형이상학'이다.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본질, 존재의 근본 원리를 사유나 직관에 의하여 탐구하는 학문'을 가리킨다.
형이상학형이상학(形而上學 · metaphysics)은 관념적 사유의 세계관에 관한 것을 다루는데,
즉 “사물의 본질, 존재의 근본 원리를 사유나 직관에 의하여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와 상대적으로 형이하학((形而下學, physical science)은 형체를 갖춘 사물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주로 자연과학을 일컫는다.
데카르트와 칸트의 역할
쉰일곱 살에 첫 번째 위대한 저작 <순수이성비판1781>을 출간했다.
칸트의 도덕철학은 '자율성' 개념에 기초하는 윤리 이론으로서,
도덕적 행위자가 자유롭기 때문에 무한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본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다음에 저술한 것이 <도덕형이상학>이라고도 하는데,
그 가운데 ‘너의 의지의 격률(格律)이 보편적 입법 원칙에 의거하여 행위하라’라는 문장이 있다.
* 격률(格率) : 인간이 이성으로 행동함에 있어 "행위의 규범이나 윤리의 원칙. 준칙(準則)"을 말한다.
논리학이나 수학에서는 '논리상 자명한 명제 또는 공리(公理)'를 일컫는 말이다.
간단히 말하면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행동의 규칙이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이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여기서 "마땅히 행할"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페(H6310: פֶּה, 페 peh)이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입(mouth)이라는 단어인데, 부모나 신적 권위를 가지고 전수해 주는 것으로 삶의 규범을 말한다.
그렇다. 인간이라면, 사람이라면 ‘보편적 입법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명제(命題)를 자신의 푯대로 삼아야 한다.
동양에서는 이러한 사람을 군자(君子)로 '성품이 어질고 학식이 높은 지성인'으로 여겼다.
또 성인으로 불렀다.
고상함, ‘성(聖)’은 무엇인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에서 구별되는 '탁월함'이다.
'순수함'이다.
'고상함'이다.
사람이 추구하는 최종적인 행복은 ‘聖’이다.
‘聖’ = 귀이(耳)와 입구(口), 그리고 임할 임(壬)
‘聖’ = 耳 + 口 + 壬
모든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
인간의 이성(理性, reason)이다.
이성은 어떠한 척도와 기준을 두고 분별력을 토대로 참·거짓, 선·악 따위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감정애 의해 흔들린다. 그러므로 과연 이성을 믿을 수 있을까?
과연 인간 안에 순수이성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인간의 의지로 순수이성을 발현할 수 있는 존재인가?
과연 어떤 사람의 결정이 순수이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래서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이라는 글을 쓰게 된다.
인간에게 순수이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순수이성의 발현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감정에 의해 순수이성은 왜곡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깡그리 무시할 수는 없다.
그의 실천하는 모습을 통해 이율배반적인지 아닌지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율배반이 아닌 사람을 동양에서는 성이니라 했던 것이다.
그들을 군자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면 성인이나 군자는 어떤 사람들 이었는가?
그들은 먼저 잘 듣는 사람이다.
그것도 경청해야 한다.
들어야 선과 악, 옳고 그름, 좋음과 나쁨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심없이 진실을 입으로 말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옳고 그름을 입으로 판결해 주는 사람이다.
입은 삐뚫어졌어도 말은 바르게 해야 한다.
귀이(耳)는 밖으로 부터 들어 오는 전달되는 모든 것이다.
여기서 격률이 없으면 오해하거나 편견을 갖고 남을 함부로 판단해 버린다.
그리고 입구(口)는 내 자신 안에 있는 기준으로,
곧 나 자신의 생각과 종합적인 사고의 결과를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책임을 져야한다.
책임질 말을 해야 한다.
그래서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 했던 것이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
법에서 위증은 무거운 벌이 있다.
재판은 말을 듣는다.
그리고 그것을 따라 판단하고 입으로 판결을 내린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
이 말을 기억하고 명심하자.
잘못 입을 놀리면 안된다는 표현은 다소 격하지만, 사실이다.
그래서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 하지 않았던가!
말과 행동을 가지런히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임(壬)이다.
‘맡기다. 짊어지다’는 뜻이다.
임(壬)은 임신한다는 뜻의 ‘아이 밸 임(姙)’에서 만든 글자다.
任자는 '맡긴다'는 뜻을 나타내는 亻(사람 인)과 소리를 나타내는 壬(북방 임)이 합쳐진 형성자이다.
선비 사(士) 부수에 속해 있는 글자이다.
한자로 壬('북방 임')은 '북방', '아홉째 천간', '간사하다', '크다' 등을 뜻한다.
여기서 천간(天干)은 하늘에서 흐르는 오행의 기운으로 물로 보았다.
생명을 주는 것이다.
듣는 것, 말하는 것, 그리고 진실하게
고상함, 이처럼 《들어 주는 것, 말해 주는 것》은 생명을 주는 것이다.
우리의 이성이 옳게, 바르게, 편견없이 말하고 책임질수 있는 삶,
누구나 그를 존경하고 따를 것이다.
그런 사람을 성인(聖人)이라 한다.
이것이 철학(哲學)의 정신이다.
누가 나에게 나를 더 고상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 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