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골짜기를 지날 때(1)
시편 84편은 고라자손이 쓴 시로 [순례자의 노래]입니다.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6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순례자는 하나님이 성전이 있는 곳으로부터 먼 곳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빨리 영혼의 고향인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가고 싶어 합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순례자들, 그들이 가는 길이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기어코 가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그의 시선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9절에서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는 다윗입니다.
고라 자손에게는 꼬리표가 붙었습니다.
고라의 후손들은 모세 때에 모세를 거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멸망당한 가문이라는 불명예가 있었습니다.
그 불명예를 벗겨준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성전에서 찬양하는 자로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나님을 거역했던 우리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해 주셨습니다.
2절에서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그가 얼마나 간절함으로 찾고 있는지 설명합니다.
이제 본 시를 통해 다른 시들에서 볼 수 없는 특징들과 3가지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 만군의 여호와, 시온의 대로, 복에 관한 것입니다.
첫째, '만군의 여호와(체오바트)
"만군의 여호와(1,3,8,12절)"
이 표현을 제일 먼저 사용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삼상 1장에서 나오는 한나입니다. 위대한 선지자나 사사가 아닙니다.
"잉태하지 못하던 한이 맺혀있던 한 여인"입니다.
기도여 여장부, 주의 전에 나아가 눈물로 기도하던 여인의 입에서 나온 기도입니다.
사무엘상 1장 10절은 그녀가 얼마나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눈물로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여로해 동안 주의 전에 오를 때마다 한 맺힌 기도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는 왜 만군에 여호와라는 표현을 하게 되었을까요?
얼마나 간절했으면, 자식을 주시면 그 자식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합니까?
한나의 눈물을 아십니까?
한나의 눈물은 처음에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잉태하지 못하고 자식을 낳지 못하는 한 여인의 눈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신의 불임이 얼마나 불행한 고통인지를 처절하게 몸으로 경험했던 한나,
하나님도 이스라엘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식이 없는
마치 자신과 동일한 불임의 처지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그래서 하나님의 고통부터 먼저 풀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하나님의 자녀를 낳는 자로 바치겠다고 합니다.
그가 낳은 사무엘이 바로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영적 아비, 영적 어미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만군의 여호와라고 부릅니다.
만군(萬軍)은 말 그대로 일만 만萬,萬 군사군軍입니다.
이 말은 수도 없이 많은 군인들을 이끄는 군사령관을 일컫습니다.
히브리어 "짜바(צבא)"는 군대를 의미하는데, 특별히 '방위군'을 나타냅니다.
[체바-오-스]는 [차-바-](나간다)를 어원으로 하는 말로써, [전쟁에 나간다], [별이 밤하늘에 나온다] 등의 뜻입니다.
마치 수많은 군사를 이끄는 사령관처럼, 전쟁에 능하신 왕처럼 그를 고백합니다.
왕의 명령, 사령관의 명령 한마디면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명령만 하십시오. 즉시 시행하겠습니다."
"주여 말씀만 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이 '만군의 여호와'라는 이름이 한나 이후에 사무엘상 17장에 나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수 블레셋에게 짓눌려 있었습니다.
부득불 한판 붙어야 합니다. 피할 수 없는 결전이기에 서로가 마주하고 대치한 상태,
팽팽한 긴장 상태로 40일이나 지났습니다.
누구도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서지 않습니다.
이때에 전쟁터에 소식을 들으러 왔던 어린 다윗이 골리앗이 모욕하는 소리를 듣고 분개합니다.
힘으로 싸워서 이길 능력이 없습니다.
이 상황을 뒤엎을 방법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뿐입니다.
그가 친히 싸우신다면, 그가 도와주신다면, 다윗은 확신했습니다.
"전쟁의 승패가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하고 만군의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믿었습니다."
그는 거인 장수 골리앗에게 쫄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개 취급하듯, 그를 향해 당당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이것이 승리의 비결이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시인에게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비록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지만, 만군의 여호와는 지금도 나를 지키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네 번씩이나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만일 두려움과 불안,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다면 담대하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 나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
둘째, '시온의 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시를 통해 두 번째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또 아름다운 신앙 안에 살던 신자도
예외 없이 눈물의 골짜기를 걸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분명 사랑하시는데, 왜 "그들로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도록 허락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고통의 상황에 놓여 있을 때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이유를 묻지 마십시오. 왜 이러하냐고 따지지도 마십시오.
그러한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방밥은 딱 한 가지입니다. 살아온 삶을 복기해 보는 것입니다.
바둑을 두고 나서 이겨져 져도 그들은 모두 복기(復棋·復碁)를 합니다.
복기는 새로운 것을 그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깨닫게 해 주고,
다음에는 그러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 줍니다.
바둑기사 이창호는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 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 준다. 고 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서 고통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더 강하게 더 담대하게 만드시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를 알게 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그의 사랑 놀랍도다, 변함없는 나의 친구"입니다.
11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이것이 다윗이 내릴 눈물을 흘리며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는 이유라고 결론을 지은 것입니다.
세 번째, '복'(4,5,6,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 84:12)
“יְהוָה צְבָאֹות אַשְׁרֵי אָדָם בֹּטֵחַ בָּךְ׃
“Yahweh of Armies, blessed is the man who trusts in you.”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6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는 네 번이나 예를 들어 "복"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 세상에 어떤 것을 많이 소유하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에셰르의 복은 이미 하나님이 그를 보시고 복을 주심으로《행복, 복, 지복》입니다.
복(H835: אֶשֶׁר 에셰르 esher) : 아샤르(H833)에서 유래했다. '행복(happiness), 복 (blessedness), 지복(bliss)'을 의미한다.
이 명사는 언제나 남성 복수 연계형 <아쉬레>로 나온다. 감탄사로 '~는 복되도다(복이 있도다)' 또는 '복되도다...'로 번역할 수 있다.
첫 번째(4절)는 "주의 집에 사는 자들"입니다.
두 번째(5절)는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입니다.
세 번째(6절)는 "눈물의 골짜기를 지날 때 많은 샘들과 이른 비가 채워 주는 자"입니다.
네 번째(12절)는 "주께 의지하는 자의 복"입니다.
결국 종합해 보면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당장 내 손에 현찰을 쥐어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사모하는 자들에게 당신의 손길로 그들의 인생길에 모든 환경을 통해서 인도해 가십니다.
3 절하,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그는 주의 집에 머물 수 있는 참새와 제비조차 부러워합니다.
10 절하,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의 궁정에 문지기로 있는 자를 부러워합니다.
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방패시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십니까?
방패는 전쟁터에서 적의 화살과 창과 칼을 막아내는 유일하게 몸을 숨기고 살아날 수 있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가장 두려워하고 떨 수밖에 없는 환경에 그에게 나타나셔서 위로와 격려를 하십니다.
창 15장 1절,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습니까?
아브라함을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의지하고 의뢰하는 자들에게 이같이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들에게 주시는 선물이 있습니다.
11절 하,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아끼지 않고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시편 23편 5절처럼, "내 잔이 넘치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일 지금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합니까?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셨지가 아니라 이전에 나를 도우셨던 하나님은 은혜를 되돌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던 길에서 무슨 일로 내가 골짜기로 돌어서게 되었는지,
그리고 예전처럼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사모해야합니다.
여러분도 고라의 자손처럼, 하나님을 찬양하며 노래하는 인생을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