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羊門)곁 베데스다 연못이야기
양문(羊門)곁의 베데스다 연못(요5:1~14)
요한복음 5장에 상반부에 ‘베데스다(자비의 집) 연못의 오래된 병자’에 관한 기사 중
"천사들이 가끔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였다는 이야기"는 어떤 사본에는 없습니다.
믿을만한 사본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말 성경에는 이것을 넣어서 본문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마치 전설같은 이야기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처럼 무슨 이유에선가
그 지푸라기를 잡으러 온 많은 병자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왜 병자들이 베데스다 연못가에 모였을까?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가려면 총 6개가 있는 문이 있습니다.
물고기가 들어가는 문, 똥을 내버리는 문 등이 있듯이 제사에 사용할 양(짐승)들을
가지고 들어가는 문이 있었습니다.
바로 양의 문입니다.
요10장의 목자와 양에서 나오는 '나는 양의 문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쉴터에서 가져온 비유입니다.
많은 목자들이 각자의 양을 치다가 들판이나 산 어귀에 만들어 놓은 양의 우리에
몰아넣습니다. 그리고는 목자가 그 입구를 몸으로나 나무로 막습니다.
외부로부터 맹수가 침입하지 못하기 위해서이지요.
밤에 양이 밖으로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자신을 "나는 양의 문이다"라고 말씀하셨을까?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양의 문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집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가 있습니다.
그곳으로 들어가려면 제물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특별히 성전 북쪽에 위치한, 즉 예루살렘성 안으로 들어오는 진입로 역할을 하던
세 가지 동물 이름이 붙여진 문들이 있었다.
<양문>, <어문>(느3:3, 느12:39, 습1:10), <말문>(렘31:40)이다.
요한복음 5장 2절, “예루살렘에 있는 ‘양의 문' 곁에,
히브리어로 베데스다(베드자다)라는 못이 있는데, 거기에는 행각이 다섯 있었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양문은 다른 문들과 달리 자물쇠가 없었다고 합니다.
즉, 24시간 열려 있었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으로는 양이나 소와 같은 희생제의용 가축들이 들어가는 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일반적인 문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가는 성문 가운데는
평민이나 병자와 가난한 자들은 들어갈 수 없고,
다만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 같은 특권층들만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문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이 문으로 성 안에 들어가려면 <성전세>를 내고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결국 출입이 막혀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구나 유일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양의 문>이었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이들은 조차 허용되는 이유는 <가축 : 짐승>이 드나들던 양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이 문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이 양의 문입니까?
하나씩 풀어가 보겠습니다.
베데스다에 모인 병자들
당시 이 양문 바로 옆에는 베데스다라고 하는 연못이 있었다.
히브리어의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House of Mercy)이라는 뜻이었고,
이 못을 일컬어 <양의 못>이라고도 불렀다.
이 연못은 본래 기원전 2세기 시몬이 대제사장으로 있던 때에 세워졌는데,
길이 100~110m, 너비 62~80m, 그리고 깊이 7~8m의 두 개의 쌍둥이 연못으로서
성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점차 유대인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성전으로 올 때에 그들이 가져온
희생 양을 씻는 목적으로 활용되면서, 양의 못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먼 곳으로부터 제물을 가져오면서 더렵혀진 것을 씻겨야만 제사장에게 검사를 받고
성전으로 가지고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예수님 시대로 넘어오면서 이러한 거룩한 풍경은 사라졌다.
성전 안에 성전세를 내고 들어가면 이미 장사꾼들이 제의용 가축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대제사장과 목장주들 사이에 서로 밀거래를 하면서....
희생양을 씻기던 기능이 없어지고 이곳에서 씻으면 치료의 효과가 있다는 믿음이 퍼지면서,
불치병에 걸린 환자들이 늘 집합하는 장소로 변질되어 가게 되었다.
신앙일까 신념일까, 그곳에서 씻고 나았다는 신화적 전설이 조금씩 만들어졌고
급기야 천사가 내려와 치료해 준다는 소문이 퍼졌던 것이다.
성전 안에서 사서드리는 희생제물로 구원이 있을까?
베데스다 연못에서 구원이 있을까?
그나마 성전에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람들,
성전에서 작동하고 있는 하나님이 본래 주셨던 방식으로 정상적인 구원이 작동하고 있었을까?
성전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배제된 사람들,
그들이 찾던 베데스다에서 구원이 있을까?
가난한 자들은 미신으로 구원(치료)을 받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구원은 없었습니다.
38년된 병자, 그는 예수님께 택함을 받았습니다.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가라."
38년 동안 누워서 지내던 침대 그것이 그의 유일한 재산이었습니다.
그는 고침을 받은 것이다.
이제 성전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얼마나 기뻤을까?
"나도 이제 제사(예배)에 참여할 수 있구나!"
그는 치유되자마자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고침받을 것을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만난 유대인들은 그가 '안식일'에 자리(침대)를 들고 가는 일을 보았고,
그들은 시비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안식일을 어겼어. 알기나 해.
뭐 고침을 받았다고? 안식일에 누가 너를 고쳤단 말이야.
안식일에는 예배하는 것과 장례나 아기를 낳는 것 외에 일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몰라."
"그래 나 보고 너랑 같이 기뻐해 달라고.
어림 반푼어치도 없지"
그들은 그가 고침받았다는 사실에 조금도 관심은 없었습니다.
도리어 안식일을 어겼다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었습니다.
아마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드리는 거룩한 예배에 방해받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들이 불쾌하였던 것은 양의 문으로 들어왔다는 것,
그리고 안식일 규정을 어기고 고침을 받았다는 것이 싫었습니다.
자신들이 얻는 구원에 저 사람이 참여한다는 것이 싫었습니다.
베데스다에서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는 기사는 사실일까?
어떤 사본에는 이러한 전설적인 이야기는 없습니다.
천사들이 내려와 무슨 기적을 베푸는 일을 했다는 것은 신빙성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죽했으면 그곳에는 38년째 오매불망 치료받을 구원의 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을까.
"그런데 고침을 받았다고."
"아이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어디서 개가 풀 뜯는 소리를 하고 있어."
"우리보고 네 말을 우리가 믿으라고.
같이 기뻐해 주고 축하해 달라고.
우리는 거룩한 사람들이야.
너같은 병자였던 사람하고 달라."
안식일인데 지금 손에 들고 다니고 있는 그 더러운 냄새하고 침대는 뭐고.
지금 네 얼굴 봐라.
그게 사람의 몰골이냐!
그에게 일어난 중대한 사건은 ‘성전에서’ 다시 예수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목자이셨구나.
그분은 나를 자유케 해 주셨고, 나를 알아 주셨구나.
나를 고치신 것만으로도 나는 그분이 메시야라는 것을 인정하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