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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가슴으로 살자

[明泉] 맑은 샘물 2023. 7. 14. 09:35

한쪽으로 치우진 설교(?)

김형석 교수는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을 꺼냈다.
"왜 스님들이 쓴 책은 베스셀러가 돼서 많은 사람들이 읽는데 목사님이나 신부님들이 쓴 책은 많이 읽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됐는가?"
그런데요.
이유가 있습니다.
"스님들은 인생을 얘기합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걸
가르쳐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우리 목사님들이나 신부님들은 《교리》만 자꾸 얘기하니까.
그건 교회 안에서만 중요하지,
바깥사람들은 관심이 적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사셨는가?"
예수님은 인생을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제일 큰 해답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뭔고하니
"사람은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입니다.
이제 104세가 되신 노철학자가 한 세기 이상을 살아오면서 보아왔던 오늘날 기독교의 맹점을 지적하신 말씀이라 여겨집니다.
이러한 지적이 나온 것은 더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사는 만큼 설교한다

그러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설교보다 강독(講讀)이라 했습니다.
강독은 사경(査經, 성경을 자세히 살피거나 찾아봄)을 통해 깊이있게 분석하고 풀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의 설교는 언제나 묵직했습니다.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이같이 힘있게 설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삶을 자신들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설교(강독)은 《신앙과 삶》은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믿고 아는 만큼 살아갑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신앙과 삶을 떼어놓을 수 없었습니다.
신앙(복음)은 그들의 목숨(생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순교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종교개혁자들 역시 목숨을 걸고 개혁운동을 했습니다.
그것이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늘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참된 진리만이 영혼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교리와 경건주의의 조화

아무리 좋은 설교도 성경적《교리》가 없다면 이단이 되고 사이비가 됩니다.
교리가 빠지면 가짜가 되고  짝퉁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교리가 중요합니다.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에게는《복음》에 대한 열정과 “Logic on Fire(불타는 논리)”가 있었습니다.
즉, 복음으로 상하고 찢기고 짓눌리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절망 중에 있던 자들이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희망과 소망이 함께 용솟음쳤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자들의 후예들은 1세대들만큼 치열하게 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미 종교개혁자들이 길을 닦아 놓았고,
그들은 그 위를 지동차를 타고 달려가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뜨거운 가슴을 느끼지 못했고,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이 남겨놓은 <책-교리>들만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논리- 냉철하게 만드는 교리"에 치중한 나머지 "희망을 주는 복음 -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을 되찾으려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매우 바람직한 것이었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과 따뜻함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칭찬할 만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지나치게 편향적으로 흘러 개인적 체험을 강조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균형을 잃고 은사주의와 신비주의로 가는 유혹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초대교회 때 영지주의가 혼합되고,
축사와 병고침(신유)에만 강조하면서
현세 기복신앙과 은밀한 거래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혜로운 설교자

그러므로 <교리와 복음, 삶의 이야기>가 잘 섞이어야 합니다.
콘크리트 최적배합 비율은 시멘트, 잔골재, 굵은 골재를 1: 3: 6로 배합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교리적 뼈대(말씀)가 60%,  복음적 삶(기도)이 30%, 삶의 이야기(찬양)가 10%가 있어도 전달하는 방법이 문제입니다.
예배의 성격에 따라 주일 예배,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 등 집회의 성격에 따라  말씀집회, 기도집회, 찬양집회를 특화할 때에 비율은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삶을 이야기하셨지만, 그 뼈대는 늘 교리가 녹아있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는 삶을 꿈꾸었습니다.
《말씀, 기도, 찬양으로》나아가야 합니다.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가슴과 삶의 노래가 있어야 합니다.

따뜻한 가슴으로 삶을 노래하자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 주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던가?
무엇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고 노래를 부르게 했던가?
바로 복음이었고,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우리에겐 부를 노래가 있습니다.
아직도 못다 부른 노래, 어떤 상황애서도 노래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기쁘게 해 주시는 《주님》입니다.
그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주신 것들을 우리가 찬송하길 원하십니다.
당신의 이름과 하신 일들을 우리가 찬송할 때에 우라 영혼을 만져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찬송 중에 거하십니다.
주여! 이곳에 임재하셔서
내 영혼에 만져 주소서


🎵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저 아침 해와 저녁 놀 밤 하늘 빛난 별
망망한 바다와 늘 푸른 봉우리 다
주 하나님 영광을 잘 드러내도다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그 소리 가운데 주 음성 들리니
주 하나님의 큰 뜻을 내 알 듯 하도다
주 하나님의 큰 뜻을 내 알 듯 하도다 아멘
https://youtu.be/d1De0yeWsc4

시편 8편
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2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https://youtu.be/l9p8esuT5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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