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심플하게, 스마트하게

[明泉] 맑은 샘물 2023. 7. 2. 09:45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사유(思惟)하자.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사유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사색하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유 없이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철은 사람을 행복에로 나아가게 해주는 나침판이다. 

명철로서 끊임없이 사색하여 얻은 총합을 <나의 논리로 단순하고 명쾌하게 규정>하고 정의할 때 비로소 그 사유는 내 인생에 가치 있는 것이 된다. 

이것이 철학자들을 탄생시킨 이유이다.

 

무엇이 인생을 빛나게 하는가? 무엇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가?

사람은 누구나 보다 나은 삶, 좋은 삶을 찾아가고자 고민한다.

인간의 무지를 깨우쳐준 소크라테스,

정의를 찾도록 상상의 날개를 달아 준 플라톤,

종합백과 사전처럼 인생에 관한 것들을 정리하여 단순하고 명쾌하게 정의해 준 아리스토텔레스

우리에게는 그들이 쌓아놓은 것들, 그들의 어깨를 딛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다.

소크라테스가 산 속의 옹달샘에서 흘러나오는 시냇물이라면,

플라톤은 흘러가는 강물처럼 지성세계를 넓혀 주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다처럼 모든 분야를 백과사전처럼 정리해 주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거의 모든 학문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는 논리학·형이상학·인식론·윤리학·정치학·경제학·생물학·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엄청난 업적을 쌓았고,

그것을 후대에 물려준 인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존재론

‘삶의 목적으로서의 행복’,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의 모든 존재에는 태어난 목적이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은 <목적을 가진 존재>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행위는 결국 "행복"을 향한다고 보았다.

그 행복을 ‘덕’(arete)이라했다.

덕은 뛰어남, 탁월함(excellent)을 뜻한다.

그 이전에 스승인 아테네 출신 플라톤은 현실 세계와 이상 세계를 나누었다.

즉, 형이상학의 윗 세상인 영원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완전한 세계를 ‘이데아’의 세계라 했다.

이와 반대로 형이하학의 아랫 세계, 인간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보았던 것이다.

마치 인간도 영혼과 육체로 존재하듯.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통합하고 하나로 보았다.

그는 현실을 중요시하며 현실세계에서의 삶을 강조하는 현실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참된 행복은 무엇이며 어떻게 얻는가?

세상에 각각의 존재하는 것의 목적은 덕(탁월함, 뛰어남)이다.

그 덕(탁월함)은 ‘중용’(치우치거나 넘치지 않음)에서 나온다.

중용(中庸)은 치우침이나 넘침이 없는 알맞은 상태나 정도를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존재 목적이 덕이다.

그 덕을 올바르게 발휘하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보았다.

중용의 덕은 행복의 지름길 

인간은 이성적 사고로 최상의 ‘진리’를 찾아감으로써 “인간다움”에 이른다고 보았다.

중용의 삶에는 언제나 “지혜, 용기, 절제 등”이 필요하다.

인간이 행복하고자 한다면 쾌락과 도덕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중용을 선택하고 그것을 실천할 때 얻는다고 보았다.

 

누구의 정의를 따라야 하나?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소크라테스는 “신을 모독했다"는 죄명으로 재판을 받고 죽어야 할 위기가 왔다.

그런데 그는 악법도 법이다라면 독배를 마신다.

그럼으로써 모든 판단을 후세에 몫으로 남겨 놓았다.

공교롭게도 아리스토텔레스 자신도 소크라테스처럼 신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똑같은 재판으로 죽을 위기가 찾아왔다.

그러나 그는 (나는) “아테네 사람들이 ‘가장 현명한 자를 사형시켰다’는 죄를 두 번 짓게 할 순 없다!”라며

잽싸게 망명의 기회를 선택하고 훗날을 도모했다.

자신이 행복하기로 선택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