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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들

[明泉] 맑은 샘물 2023. 5. 29. 00:12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주께 와 엎드려

경배 드립니다

주 계신 곳엔

기쁨 가득

무엇과도 누구와도

바꿀 수 없네

예배 드림이

기쁨 됩니다.

 

주께 와 엎드려 경배 드립니다

주 계신 곳에 기쁨 가득

누구와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네

예배 드림이 기쁨 됩니다

주께 엎드려 경배드리네

주께 엎드려 경배 드리네

무엇과도 누구와도 바꿀 수 없네

예배드림이 기쁨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배로 삽니다. 

바울은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구약성경을 어릴 때부터 읽었고, 오경은 외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서로된 성경에서, 그리고 실제로 눈으로 보았던 제사장들이 시행하는 제사까지

아주 세세한 것까지 속속들이 알고 알았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 "참된 예배"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예배에는 반드시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제물은 짐승이 아니라 우리의 몸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져야 합니다.

 

여호와께 성결

예배는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구원받은 자녀들이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예배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던 제사장들의 예복은 거룩하게 구별되었습니다.  

“너는 또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위에 매되 곧 관 전면에 있게 하라”(출 28:36~37)

제사장이 그들의 머리에 쓰는 관(冠)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란 패가 붙어 있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 서야 했기 때문에 때문에 그는 성결해야 하며,

자신뿐 아니라 예배하는 백성들을 성결하게 하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서는 일(예배)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복된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머리에 쓰는 관에 ‘여호와께 성결’이란 패를 붙이도록 했습니다.

그 관은 자기를 드러내거나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자신을 보여 드리고,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예수님은 어떤 장소나 어떤 짐승으로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예배의 본질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예배의 정신입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영과 진리란? 원어의 문법적 구조  ‘영’과 ‘진리’는 등위접속사로 연결되었기에 각기 다른 뜻입니다.

영어성경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in spirit and in truth”(영으로 그리고 진리로)

혹은 “in spirit and truth”(영과 진리 안에서)로 번역했습니다(“in spirit of truth”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순서입니다.

영 안에서, 또한 동시에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만일 “영과 진리로” 해석한다면 그 둘이 예배의 수단 내지 통로라는 뜻이 됩니다.

둘째는 “영과 진리 안에서”로 번역해도 되는데, 예배자가 예배드리게 된 근거와 범주를 나타내므로

둘 다 예배자가 예배드리는 마음의 자세라고 볼 수 있지요.
예수님은 이 놀라운 말씀은 한 사람을 놓고 상담(설교)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본문에서의 “영과 진리로 예배드려야 한다”는 일차적인 의미는 단순합니다.

여자의 질문은 아마도 주님 "그런 예배는 언제부터 가능한 가요?"

예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이때’는 "지금, 여기서"라는 의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나 그리심산 성전이든 당시에는 형식적인 절차를 매우 중시 여겼습니다. 

이 말씀은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보다 중요한 것은 예배의 태도, 자세, 마음가짐을 말합니다.

먼저 "영으로"라는 말씀은 예배자가 거듭난 사람, 영적인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예배이어야 합니다. 

거듭나지 아니한 자연인의 예배는 참석자요, 보는 자입니다. 

예배를 살아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예배드리는 거지 하고 순서와 형식 등을 봅니다. 

그들 안에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없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말씀을 들으며 마음을 기울이고, 기억 속에 저장하며, 삼가 조심하여 깨닫기 위해 듣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청중일 뿐입니다. 에배를 구경하고 보고 있는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진심으로 영이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자 하는 마음의 자세와 오늘 주시는 말씀으로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갈망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거듭나고, 성령에 이끌리는 사람만이 참된 예배가 그 안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영이 거듭난 그들은 성령을 따라 사모하며 예배합니다.

이 예배를 제정하신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정확히 아는 차원에서 예배드립니다.

먼저는 영적인 예배요, 둘째는 진리의 말씀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만나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영으로는 사모함이 가득하고, 진리로는 경외심이 가득합니다. 
이차독자였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하신 의도를 따라서 더 풍성한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지금 오늘 이 말씀을 읽는 우리들도 더 풍성한 예배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하심, 그리스도의 풍성한 말씀과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압니다. 

예수님의 죽으심, 우리를 위해 자기를 내어 주심과

예수님의 부활, 우리를 의롭다 하심에 대한 풍성한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아버지입니다. 

예배는 아버지와 만남, 사귐, 교제입니다. 

성령 안에서 거듭난 신자가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쳐 주신 진리 안에서

그가 보내신 성령으로 교제하는 가운데 예배를 드립니다.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종말론적인 예배를 드립니다.

언제나 우리 자신이 예수와 연합하고, 성령 안에서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living sacrifice)로 바치면서

음란하고 악한 이 세대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내기 그런 삶을 살아갈 힘을 구하며

우리의 죄를 용납하시고, 사죄의 은총을 베푸시며,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예배합니다.
찬양을 하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기도를 하면 하나님 사랑으로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말씀을 들으면 가슴이 시원해집니다.

마음으로 경배하면 경외심으로 충만해집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동행하시며

나보다 앞서 가시며 인도하여 주실 그 사랑이 기대가 됩니다. 

날 만나라

하나님이 우리로 예배에로 초대하시고, 예배하게 하심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예배는 하나의 사건을 기대하며 나아가는 신앙행위입니다. 

그 사건은 하나님이 우리 영혼을 만져주시는 만남입니다. 

날 만나라 날 만나라
그룹 날개 사이에서 날 만나라
날 만나라 날 만나라
그룹 날개 사이에서 날 만나라

주 경배해 주 경배해
그룹 날개 사이에서 주 경배해
주 경배해 주 경배해
그룹 날개 사이에서 주 경배해

주 만나리 주 만나리
그룹 날개 사이에서 주 만나리
주 만나리 주 만나리
그룹 날개 사이에서 주 만나리

 

예배는 에자가 드리는 것이지만,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초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과거에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듣게 됩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예배의 원형으로서의 제사 

이제는 구약시대처럼 짐승의 제물을 드리지 않습니다.

그 짐승은 나의 죄(나의 옛사람)를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나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나의 몸을 산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는 반드시 우리 자신을 헌제물로 드림이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이 없이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예배가 개혁될 때

한 사람의 예배자가 형식적인 예배에서 살아있는 예배에로 개혁이 일어나면

모든 회중도 변화 속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그 예배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위해 죽으심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예배자는 항상 예수죽인 것을 몸에 짊어진 자입니다(고후 4:10-12)고후4:10-12)

10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그러므로 예수 죽인 것을 짊어진 자 안에는 예수의 생명이 역사합니다. 

그들이 은혜받으면 세상에서 불꽃같이 살아갑니다. 

불꽃처럼 살아가기를 열망합니다. 

예수의 생명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들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 바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 안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진리를 경험하는 기쁨이 충만합니다. 

성령이 그의 사람을 인도하시며

성령을 충만케 하시며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나타나고

성령의 나타남과 일하심이 보입니다. 

예배 가운데 회중의 영혼이 깨어나 말씀이 믿어지고, 

말씀에 감격하고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과 교제가 일어납니다. 

느끼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거친 영혼을 어루만지시는 지나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따뜻함이 느껴지고

죄의 먹구름이 사라지고, 사유하심을 느끼며

정결하고 깨끗한 신부가 되어 신랑 되신 주님을 만나는 감격이 생기고

집자가를 보게 되고 느끼게 되고 경험하는 간증이 나옵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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