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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땅에 쓰신 것은 무엇일까?

[明泉] 맑은 샘물 2022. 11. 22. 18:56

강렬한 퍼포먼스
예수님은 일부러 군중들의 얼굴을 일부러 쳐다보지 않으시고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셨다.
땅에 흙이었다면 글씨가 남았을 것이고,
돌이 깔려 있는 성전의 바닥이었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과 성난 군중과의 거리는 어느 정도였을까?
예수님께 성난 군중들의 숨소리가 들렸을까?
예수님이 허리를 숙이고, 한쪽 무릎을 꿇으시고 계셨다면 군중들은 예수님이 무엇을 쓰는지 보았을 것이다.
성난 군중을 이끌고 나타난 주동자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다.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 모세의 율법에는 간음의 경우 남여 모두를 성문에서 끌어내어 돌로 쳐 죽이는 사형을 선고하고 있다.(레위기 20:10, 신명기 22:22~24)
아마도 예수님께 가까이 서 있던 그들은 예수님이 땅바닥에 쓰시는 글자가 무엇인지 금방 알았을 것이다.
그들 곧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평생 성경(두루마리)을 필사하고, 성경을 히브리어로 읽고 가르치던 엘리트들이었으니까.
성난 군중과 예수님 사이에 침묵 속에 대화가 오고 간다.
"뭘 그리 꾸물대나요. 한마디면 되는 걸."
"그래, 너희 마음을 나는 알고 있단다.
너희가 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
"그러니 급하게 굴지 마.
속 시원하게 답해 줄 테니까."
예수님은 두 번째로 땅에 글(자)을 쓰셨다.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너무나도 강렬한 퍼포먼스였다.
성난 군중들은 빨리 결론을 내고 싶었다.
예수님의 입술을 주목하며 모두의 관심이 쏠려있다.
"무슨 말을 하실까?"

그들은 어젯밤에 무슨 일을 했던가?
그들은 7장에서 초막절 ¹ 행사를 치르고 밤샘을 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잡았다며 여인을 끌고 왔다. 율법으로는 적어도 2명의 증인이 필요하다.
정작 또 하나의 범죄자인 남자는 도망갔을까?
아니면 놓아준 걸까?
그 범죄자는 없고 여인만 잡혀왔다.
이 성난 군중들은 밤새 무엇을 했던가?
그들은 초막절 명절 큰 날을 밤새 축하하며 즐거이 춤을 추고 환호성을 지르며 보냈다.
그들이 밤새도록 외쳤던 말은 무엇인가?
"여호와는 우리의 빛이요, 생명이십니다."였다.
그 축제가 그들에게 무슨 의미였나?
떠들고, 소리 지르고, 즐거워한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이 지금 계신 곳은 성전이었다.
정말 그들에게 "여호와는 빛"이실까?
그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구원자일까?
오늘날 교회 안에서 떠들썩하게 행사를 치른다.
정작 주인이신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과연 이 축제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그들은 밤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던 자들이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군중은 한 여인을 끌고 예수님 앞에 나타난다. 이 여인은 그들이 파놓은 함정에 미끼였을까?
아마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의해 남성도 여성도 그들이 원하던 일에 걸려들었을 것이다.

이 사건이 벌어진 곳
요한은 정확히 밝히지는 않지만, 그 장소를 성전으로 설정하고 있다.
만일 요한복음 8장[어떤 사본에는 없음]이 후대에 추가된 내용이라면 1,2절과 뒤에 연속된 사건인지, 성전 안에서인지, 예루살렘 시내의 어느 길에서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성전으로 추정된다.
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예수님은 어젯밤 기도하러 감람산에 갔다가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오셔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분명 영혼이 어두운 자들에게 생명의 빛을 주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영의 눈이 어두운 그들은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지 못했다.  

군중과의 대면
아마도 간음하다 잡혀온 시간은 어느 시간대였을까? 예수님은 성전을 등지고 계셨을까?
아마도 강렬한 햇빛이 예수님의 얼굴에 비추고 있는 것을 군중들은 보았을 것이다. 생명의 빛이신 주님을 보면서도 그 빛을 모르던 군중들처럼, 우리도 그런 우를 범 하지 않기를 바란다.

첫째는 예수님의 눈빛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일 듯 흥분해 있던 그들.
그들은 예수님의 눈빛과 마주칠 때에 아담처럼 숨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너의 심장을 꿰뚫어 보고 있다.
"내가 너희를 다 일고 있단다!"
아마도 사람으로 오신 여호와의 눈을 보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둘째는 주님의 음성이다.
"너희 가운데 죄가 없는 자가 돌로 치라"
범죄 하여 숨어있는 아담을 부르시던 여호와의 음성처럼.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들의 실체를 주님께서 적나라하게 드러내셨을 것이다. 그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주님, 자신들 스스로가 떠나야만 했다.

셋째는 예수님의 태도이다.
악의적인 사람들과는 맞서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피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을 공격하면 자기들의 성을 못 이겨 돌변하여 과격한 행동을 할 것이다. 그렇다고 피하면 그들은 더 난리법석을 필게 분명하다. 대략 난감한 상황이다.
예수님은 결국 성난 군중에게 이성적으로 판단하도록 하시기 위해 잠시 휴정(休廷) 시간을 가지셨다.
흥분한 군중의 상태를 조금 누구러뜨리셨다.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호소한 것이다.
한마디로 "정신 차려, 진지하게 생각해 봐."
"너희들이 하고 있는 일이 무슨 짓인지 알기나 해."
교회 안에서도 어떤 문제로 자기들의 주장을 펼치며 개인과 연관된 일에 흥분을 한다. 그리고 자기감정을 통제하지 못한다. 그들과 싸울 필요가 없다.
군중심리는 대부분 구경꾼이 많다.
이성의 판단보다 선동하는 자의 말에 휩싸여 급류에 쓸려간다.

주님이 땅에 쓰신 글씨
우리는 주님의 손에 주목해야 한다.
무엇을 쓰셨을까?
예수님의 손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법인 열 가지 말(십계명)을 주시던 그 손이다.
또 심판의 손이다. 다니엘서 5장에는 벨사살 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던 손가락이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MENE, MENE, TEKEL, UPARSIN)은 아람어인데 '세었다, 세었다, 달아보았다, 나누었다'라는 뜻이다.
주님의 그 손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치료하시고 만져주시던 그 손, 우리를 위해 사랑을 주시던 손이다. 양심의 가책을 받고 돌아가도록 이성적 판단을 하도록 흥분된 감정을 가라앉히셨다.
주님의 퍼포먼스는 군중들 스스로가 돌을 버리고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 글은 무엇이었을까? 왜 요한은 그 내용을 기록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도 아시고, 또 우리를 보고 계시며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잡혀온 여인과 대화
그리고 여인에게도 죄를 묻지 않으셨다.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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