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설교 : 성찬

설교는 말로써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설교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설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과 감화로 이끄는 방법입니다.
사람은 언어로 교감합니다. 뿐만 아니라 감정과 제스처, 몸동작이 하나의 언어와 같습니다.
보는 사람에게 말도 언어이지만, 표정이나 제스처도 언어입니다.
대부분 설교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바울은 갈 수 없을 때에 편지로 했습니다. 글도 매우 중요한 수단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가장 강력한 설교는 퍼포먼스라고 생각합니다.
말로 하는 설교나 글은 회중이 해석해야 합니다. 정보전달에 있어 해석하는 청중에 따라 이해도에 따라 지력에 따라 이해하는 수준도 다르고, 깊이도 다릅니다.
그러나 퍼포먼스는 다릅니다.
사진처럼 각인됩니다.
더 오랜 시간 강력하게 남아 있습니다.
성찬은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하나의 설교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더 풍성하게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하게 할 수 있게 할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성찬식을 집례 합니다.
그러나 집례 하는 집례자에 따라 성찬은 다르게 다가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던 그 성만찬의 자리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로 초대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은 의례적으로 자신이 보아온 대로, 또 배운 대로 선찬식을 집례 합니다.
집례자 자신도 눈물의 감격이 없는데 회중은 어떠하겠습니까.
집례자 자신도 밋밋한데 회중은 어떠하겠습니까.
성찬은 가장 강력한 설교입니다.
눈으로 보게 하는 최상의 설교요, 그리스도를 알고 만나고 경험하고 동행하게 하는 최고의 설교입니다.
성찬에서 이러한 놀라운 경험이 없다면 그들의 삶이 결코 성례전적 삶과 예배를 기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찬만큼 가장 강력한 설교로 그리스도를 경험하게 하고 그의 은혜를 각인시킬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그러므로 성찬식은 목회자에게 목숨과도 같은 피를 토하는 설교 그 이상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 순서마다 그리스도가 골고다 언덕을 향해 올라가며 쓰러지고 넘어지던 비아돌라로사의 그 핏길을 한 걸음씩 따르게 해야 합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한걸음 한걸음 발을 떼어 놓으실 때마다 그리스도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버거운 숨소리와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의 그 고통과 그가 보혈을 흘리실 때의 그 심정이 성도들의 마음으로 흘러들어 가게 해 주어야 합니다.
집례자는 성찬을 나누며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며, 또 잔을 나누어 주시며 말씀하시던 그 언약과 또 겟세마네에서 목이 메이시던 주님의 그 음성과 그의 기도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시던 그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회중의 가슴을 휘몰아치게 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