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신 하나님의 본질과 그 의미
삼위일체인가, 일체삼위인가
신명기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우리말로 번역된 "오직 하나인"은 한자로는 유일(唯一)이다.
즉,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 순화어는 '오직 하나'이다.
이 단어가 기수(갯수)로 사용되면 "오직 하나이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성경에서 명사, 형용사, 혹은 부사로서, 기수나 서수 등으로 다양하게 960여회 사용되었다.
월력에서 그 달의 "첫(번)째 날"과 관련될 때, 야하드[(H3161, 결합되다 be united)]나 로쉬[(H7218, 첫째(first), 머리(head)]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창 8:13).
만일 어떤 단어가 단 하나의 뜻만 있으면 해석하는데 문제가 없다. 논쟁할 거리가 없어진다.
하지만, 그 낱말이 가지는 뜻이 다양하고, 문맥에 따라서도 다르게 쓰인다면 를 때로는 해석도 달라지고, 그 의미도 달라진다.
"거듭나다"(요3:3~4)는 헬라어 아노센은 '거듭나다. 다시 나다.'는 의미라 있다. 그래서 니고데모가 어머니의 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는지 물었던 것이다. 하지만, '위로부터 철저히 나다'는 의미도 있다. 예수님은 이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요한복음15장에서도 제하여 버린다는 말에서 '잘라내다, 제거하다'는 뜻도 있지만, '들어올리다'는 뜻도 있다. 문맥상으로는 들어 올라다의 의미가 더 강하다.
이처럼 단어들마다 전자로도 해석되고, 후자로도 해석된다.
문맥을 통해 선택을 해야하는데, 결코 쉽지 않다.
둘 다 가능하므로 둘 다 해석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해석의 차이에서 직역과 의역에서도 그 의미가 다르게 전달되므로 수많은 논쟁들이 발생한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볼 "에하드"가 그렇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논쟁
우리말로 하나님의 속성을 번역할 때 '삼위일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일체(一體)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우리는 몇 가지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대부분은 '하나의 몸'이라는 뜻 밖에는 모른다.
일심동체는 몇 개의 몸인가?
일체라는 말은 체(體)는 뼈(骨, 골)에 살이 많이(豊) 붙어 있다는 뜻의 글자다.
骨(뼈 골)+ 豊(풍성할 풍, 두터울 풍)
뼈(骨) + 풍성한(豊) 살로 된 것은? 몸, 신체이다.
뼈와 풍성한 살로 된 것은 '몸'이지요.
몸 체(體)는 신체(身體: 몸), 육체(肉體), 인체(人體)를 의미한다. 간체자의 체(体)는 사람 (人)의 근본 (本)이 몸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뼈와 살덩어리>로만 이루어진 존재인가?
그 이상의 인간의 본질도 포함한다.
일체라는 단어를 쓸 때에는 단순히(1차적 의미) 하나의 몸 곧 단순히 살과 뼈로 이루어진 몸 뿐만 아니라 "그 존재의 속성, 본질, 특성"(이차적 의미)을 의미한다.
"하나"는 서수로 쓸 때에만 갯수로서 하나이다.
그러나 본질에서는 한개가 아니다.
같은 속성, 본질, 특성을 가진 것이 여럿이지만, 하나라는 표현을 쓴다. 일심동체는 동지를 의미한다. 여러 몸이 있지만, 뜻을 같이하여, 하나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성경에서 사용되는 단어 곧 낱말은 매우 중요하개 사용되는 것들이 있다.
"한 몸처럼, 하나의 몸"으로 번역하면 문장의 뉘앙스에 따라, 품사에 따라 다르게 번역이 된다.
보통 <낱말>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1차적 의미(표면적인 듯)와
2차적 의미(은유적인 뜻)와
그리고 때로는 암호처럼 숨겨진 의미(비밀)도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낱말 "에하드"가 그러하다.
하나됨 속에 다양성과 통일성
이것이 신성의 신비이다. 우리의 이성이 하나님을 다 알 수는 없다. 하나님을 본 자가 없다. 하지만 계시된 말씀으로 우리는 그의 속성들을 알 수 있다.
(1)에하드는 "하나 됨 속의 다양성"(일체삼위)을 인정하면서도 "통일성"(일체)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속성은 "동일하다. 하나이다. 같다"
“εἷς θεὸς καὶ πατὴρ πάντων, ὁ ἐπὶ πάντων καὶ διὰ πάντων καὶ ἐν ⸀πᾶσιν.” (엡 4: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엡 4:6, 개역한글)
“one God and Father of all, who is over all, and through all, and in us all.” (엡 4:6)
또한 일치 속에 다양성을 가지신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 위격이 동일하시다.
그러나 각 위격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신다.
성부는 성자로 변하지 아니하신다.
성자 또한 성령으로 변화하지 않으신다.
각각 독립적인 실체이시다.
그러나 동일하시다.
하나이시다.
같으시다.
신성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그 권위와 영광과 권능에서 동등하시다.
•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
그러나 위격에서는 각각 독립적이시면서 연합으로 계신다. 성부≠성자≠성령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속성 : 비공유적 속성 : 자존성, 불변성, 완전성, 영원성, 전자성, 전능성, 과 비공유적 속성 : 거룩, 의로움, 진실, 선하심, 사랑>이 일치하고, 동등하고, 하나이시다.
이것이 "일치 속의 다양성"이다.
에하드가 복수형 "아하딤"을 취한다는 사실에서도 고찰된다.
창 11:1에서 이 복수는 "말"을 수식한다.
즉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창 11:1의 처음 나오는 "같은 것" same(개역판 한글, '하나')은 유일한 것이며, 토착민과 이방인에게 함께 적용되는 유월절에 관한 "같은 율법"(출 12:49, 참조, 민 15:16)에서는 "동일한, 같은 same"의미이다.
그러면 모세가 말하는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에서 "한 one 분이시다"로 해석할 수 있고,
또는 "같은, 동일한(same) 분이시다"로도 해석될 수 있다.
신 6:4의 유명한 쉐마 "이스라엘아 들으라... 여호와는 오직 하나(one, or same)인 여호와시니"에서 <일치 속의 다양성>에 관한 문제는 신학적인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신학자와 조직신학자, 언어학자들마다 견해를 달리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하나" one가 단일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 단어의 용법은 삼위일체 교리를 고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ἐγώ καί πατήρ εἷς ἐσμέν” (에고 카이 파테르 헤이스 에스멘)
εἷς(G1520, 헤이스 heis. : 하나 one)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실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을 일컫습니다.
그는 어깨에 정사(지배, 통치)를 메었고, 기묘인 이유로는 그의 탄생과 실체가 인간의 이성으로 보면 기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묘막측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이 되셨습니다. 그럼에도 혼합되거나 섞이거나, 분히되어 있거나, 지배하고나 당하지 아니하며, 오직 신비적인 연합으로 하나가 되셨습니다.
• 그는 우리 인생에 최고의 상담자입니다. = 영생에 관하여, 하나님에 관하여. 천국에 돤하여
•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입니다. = 하나님과 동등하시고 동일하심
•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등으로 불리워집니다.
=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 계셨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평강을 가져오신 분
우리는 여기서도 그가 아버지와 동일하시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가 되십니다.
1.신 6:4의 사전적, 구문론적 어려움들은 NIV에 이 구절에 대한 번역이 많이 제시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도 살펴볼 수 있다.
"여호와 곧 여호와 만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the LORD is our God, the LORD alone<홀로>라는 번역을 선택하였다. 이는 신명기 전체의 문맥과 본절의 직접적인 문맥에서 볼 때에도 적절하다.
모세는 신 6:4은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는 명령을 지키도록 이스라엘을 자극시키기 위한 도입어구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관념은 이 구절에서 강조하는 명령에 아주 잘 어울린다(참조, 아 6:8이하). 더구나 이 두 관념, 즉 이스라엘과 여호와의 유일한 관계, 그리고 그를 사랑해야 하는 이스라엘의 의무는 신명기에 기록된 모세의 설교의 중심적인 관심사였다(참조, 신 5:9 이하, 신 7:9, 신 10:14 이하, 신 10:20 이하, 신 13:6, 신 30:20, 신 32:12). 마지막으로, 스가랴는 이 본문을 이런 의미로 사용하여 그것을 우주적으로 종말에 관련지어 적용시키고 있다.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슥 14:9).
욥 31:15와 말 2:10에서 이 단어는 한 분이며,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만인을 만드셨다는 사실에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ame으로 번역하는 것도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신 6:4 들으라! 이스라엘아 "Hear, O Israel!
○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4절, 첫 글자는 들으라! hear 쉐마(שְׁמַ֖ע)
마지막 글자는 유일한(하나이신) One 에하드 אֶחָֽד
“שְׁמַע יִשְׂרָאֵל יְהוָה אֱלֹהֵינוּ יְהוָה אֶחָד׃
쉐마 이스라엘 야훼 엘로헤이누 야훼 에하드
“Hear, Israel: Yahweh is our God. Yahweh is one.” (신 6:4, WEB)
"Hear, O Israel! The LORD is our God, the LORD is one!
에하드(H259: אֶחָד, echad) : 하나 one
에하드는 아하드(H258)에서 유래했으며, '하나 one'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약 1,00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a) '하나 one'(창 1:9, 창 27:38, 창 27:45, 출 12:49, 삼상 1:24, 슥 14:9, 말 2:10 등).
'같음'(창 40:5, 욥 31:15),
소수(몇)(창 27:44, 창 29:20, 단 11:20),
한 사람과 같이, 함께(삿 20:8, 삼상 11:7, 스 2:46, 스 3:9, 스 6:20, 전 11:6, 사 65:25).
(b) '각각, 제각기, 모두 다'(출 36:30, 민 7:3, 민 7:85, 민 28:21, 왕상 4:1, 왕하 15:20, 민 7:11, 민 13:2, 수 3:12 등).
(c) '어떤 사람'(삼상 1:1, 삼하 18:10, 왕하 4:1, 에 3:8 등).
(d) '오직 하나'(욥 23:13, 겔 7:5), 동시에, 즉시(잠 28:18, 삿 16:18).
(e) '하나는... 또 하나는'(출 17:12, 출 18:3, 출 18:4, 암 4:7 등).
(f) 첫째(창 1:5, 출 39:10, 겔 10:14, 출 40:2, 창 8:5, 창 8:13, 단 9:12 등).
(g) 한번(왕하 6:10, 시 62:12).
(h) 갑자기, 돌연히(잠 28:18) 등으로 번역했습니다.
「일치의 개념은 장막과 관련되는데, 장막의 휘장은 함께 동여져서 하나의 단위를 이루었다(출 26:6, 출 26:11, 출 36:13).
아담과 이브는 "한 몸"으로 묘사되는데(창 2:24), 이 말은 성적 결합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창 34:16에서 세겜은 사람들을 "한 민족"이 되도록 야곱의 자녀들과 통혼할 것을 제안한다.
후에, 에스겔은 상징적으로 두 개의 지팡이를 연합해 놓으면서, 분단된 이스라엘 나라가 언젠가 재결합되리라고 예언하였다(겔 37:17).
또다시 유다와 에브라임은 한 왕을 모신 한 국가가 될 것이다(겔 37:22).
아브라함은 모든 백성의 선조가 되는 "사람"(사 51:2, 말 2:15) 즉 이 민족의 한 조상으로 간주되었다.
<일치 속의 다양성 : 일체 삼위>은 에하드가 복수형 아하딤을 취한다는 사실에서도 고찰된다.
이 단어는 창 27:44, 창 29:20, 그리고 단 11:20에서 '몇 날' a few day로 번역된다.
창 11:1에서 이 복수는 "말"을 수식한다.
즉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 말은 같은 어휘, 즉 바벨탑에서 모든 사람들이 사용했던 같은 군(群)의 말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창 11:1의 처음 나오는 "같은 것" same(개역판 한글, '하나')은 유일한 것이며 토착민과 이방인에게 적용된 유월절에 관한 "같은 율법"(출 12:49, 참조: 민 15:16)이나 초대받지 않고 페르시아 왕에게 가까이 가는 자는 반드시 죽인다는 "한 법"(에 4:11)과 유사한 것이다.
신 6:4의 유명한 쉐마 "이스라엘아 들으라...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 시니"에서 일치 속의 다양성에 관한 문제는 신학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비록 "하나" one가 단일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 단어의 용법은 삼위일체 교리를 염두해 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교리가 구약성경에 예시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이 구절은 한 분 하나님이 계시며 이스라엘은 오로지 그분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사실에 집중하고 있다(신 5:9, 신 6:5).
신약성경도 엄격히 말해 일신교적이지만, 동시에 일치 속의 다양성을 가르치고 있다(약 2:19, 고전 8:5-6)
[참고 - 에하드 (H259). 하나 one, 같은 same, 단 하나의 single, 맨 처음, 첫째의 first, 각각 each, 한번 once. 여성형 아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