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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을 정복하는 십자가

[明泉] 맑은 샘물 2023. 1. 20. 09:10

십자가는 우리의 육신에 대한 승리를 선포한다.
바울이 <육신>이라고 표현할 때는 우리들이 거듭나기 이전의 상태, 구원받기 이전에 행하던 모든 육체에 속한 일들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정욕)과 정욕(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갈 5:24)

(파데마)과 정욕(에피뒤미아스)
육체의 정욕인 정
우리말로 번역된 "정(파데마)"은 <육체의 정욕(충동)>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들은 지성의 판단을 따르지 않고 대부분 감정에 이끌이어 짓는 죄를 의미한다.
즉, 육신이 원하는 것들로 갈5:19~21을 포괄한다.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러한 행위를 일삼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바울은 경고한다.
즉, 골3:5~7절 육신으로 있을 때를 의미한다.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와같이 예수 믿기 이전의 상태에서 그 가운데서 행하던 육체적인 일들을 말한다.
바울은 그것을 이같이 설명한다.
"사망을 위하여 열매맺게 하던 것이라고."
롬7장5절, "우리가 육신으로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우리 지체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라고.
자, 하나씩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죄성 : 죄의 경향성, 죄의 성질>
"형제 자매 여러분! 나는 율법을 아는 사람들에게 이 말합니다.
율법은 여러분이 살아 있을 동안에만 그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예를들면 여자(우리들)가 남편(율법)이 살아 있을 때에만 율법으로 그에게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예수께서 십자가로 율법의 의문에서 해방) 남편과 관련된 율법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우리들이 믿음으로 예수와 연합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간 <율법의 모든 정죄>로부터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카타르게오 : 폐하다, 무효화하다)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아포크테이노 : 처형하다.
죽이다.)
우리는 이와같이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는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이미 육신(정욕-하나님을 대적하던 본성)이 못박혀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위해 열매 맺는 자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것을 강조함
왜냐하면 예수를 믿기 이전 곧 우리가 육신으로 있을 때에는
율법 아래서는 <그 육신, 그 정욕>이 그 죄의 것들(죄성)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였습니다.
결국에는 그것이 그 사망을 위해 우리가 열매맺게 하였었습니다.
이말을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우리 안에는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죄의 성질 -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성질, 경향성>을
아담에게 물려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런 것들은 죄다"라고 율법으로 알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이제는 "그러한 것들을 하는 것은 죄다, 그것을 행하면 죽는다"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우리 안에는 통제할 수 없는 <그 죄성>이
우리 <육신>이 욕망(탐심)을 불러 일으켜
도무지 그 일을 하지않고는 못배기게 역사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그것이 "사망의 열매"라는 사실을 버젓이 알면서도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그 죄성>에 이끌려 우리의 욕심(탐심)을 따라
사망을 위한 열매를 맺게하였습니다.
두번째로, 우리 말로 "정욕"으로 번역된 헬라어 <에피뒤미아스>는 '탐심, 충동질, 욕심'을 나타낸다.
이는 육체에 속한 것으로 욕망, 갈망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존재 속에 역사하는 강력한 힘 곧 육체에 속한 죄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육제를 죽여 더이상 율법으로부터 정죄는 없어졌습니다.
이미 죄용서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 지체 안에서 역사하던 <그 죄성>도 함께 죽었을까요?
완전히 사라졌을까요?
하나님이 이것은 십자가에서 못박지 않으셨습니다.
남겨 두셨습니다.
이것은 은혜입니다.
이 죄성이 없다면 죄를 짓지 않습니다.
아니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의 유혹을 따르는 우리 육신을 십자가에 못박으셨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죄성>에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죄성>을 통제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끊임없이 성령을 좇아 행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서 자신의 육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성령을 좇아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 이러한 <죄성>이 우리 안에서 힘을 잃고 죽게 됩니다.
이것이 <죄죽임>의 교리의 핵심입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서 은혜가 사라지면 죄성은 살아납니다.
지배력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지고 날마다 주님을 좇아가야 합니다.
그 때에만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보겠습니다.
저는 어릴 때 산에서 돌배나무를 먹었었습니다.
딱딱하고 맛이 없지만, 그래도 허기를 채울만 했습니다.
소화가 잘되는 것도 아닌데, 억지로 배고프니까 먹었지요.
그래서 너무 딱닥하니까 집에 가져와 솥에 넣고 당원을 넣어 쪘습니다.
조금 부드럽고, 단맛도 있어서 그렇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그렇게 먹으면 바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주배가 나왔습니다. 얼마나 달고 맛이 달콤한지요.
그런데, 나주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골에 묘목단지가 있는데, 배나무를 구입해서 마당에 심습니다.
그러면 나주배가 달립니다.
그러나 원리는 이렇습니다. 그 나주배 나누의 뿌리는 산에서 돌배나무에서 돌배를 따다가
그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영양분이 많은 땅에 심었으니 얼마나 잘 자라는지요.
그렇게 자란 돌배나무(1m~2m)를 싹뚝 잘라버립니다.
돌배나무 줄기는 쓸모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참배"나무 줄기를 접붙입니다.
접을 붙여서 한해를 지나면 돌배뿌리에서 진액을 받은 참배나무는 잘 자랍니다.
여러분이 묘목원에서 사온 모든 배나무는 접이 붙여진 것들입니다.
밑둥을 보면 접붙인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심지어 접붙이는데 사용했던 비닐이 남아 있기도 하지요)
여기서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뿌리에는 아직도 여전히 돌배나무 성질이 남아 있습니다.
그 나무를 캐서 없앨 때가지요.
그러나 열매는 언제나 참배가 열립니다.
떠 하나 알아야할 사실은 아래 밑둥뿌리에 눈이 남아 있다면 그 녀석은 자라면 반드시 돌배가 열립니다.
그래서 옮겨 심은 후에 잔가지가 땅에서 나오면 잘라 버립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 육체도 영생을 얻습니다.
그런데 육체 안에 죄성은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와 접붙여져서 참배인 영생을 얻습니다.
또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은 성령에 의해 통제되고 성령의 지배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죄의 열매가 맺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습니다.
만일 구원받은 신자에게 죄성까지도 사라졌다면
죄를 짓지 않는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죄성을 남겨두신 이유
하지만, 이 죄성을 우리 안에 남겨 두셨습니다.
사사기를 보시면 <원주민>을 남겨 두셨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나 안하나 보려고 남겨 두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삿1:28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20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21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22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23 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그들을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 주지 아니하셨더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 죄성(가나안 원주민처럼)을 남겨 두신 것은
우리들이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섬기며
그가 주신 은혜와 말씀을 좇아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령님이 사사들처럼 우리의 대장이 되사 죄를 이기고 정복하고 죄를 다스리는 자가 되게 하려하심입니다.
이는 그리하여서 죄에 대한 승리를 맛보며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로 예수 안에서 성령을 좇아 열매맺는 기쁨을 맛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죄를 이기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능력을 그리스도와 함께 나누게 하려고 하신 것에 감사합니다.
예수가 내 안에 없을 때에는 죄에게 언제나 패배당하고, 정복당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수 안에서 날마다 죄에 대해 승리를 외치며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가나안 원주민처럼
죄성은 우리 안에 가나안 원주민처럼 숨어지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강하면 그들은 세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방관하거나, 게으르거나,
하나님께 싫증을 느끼고 우상을 사랑하거나 세상을 사랑하면 서서히 등장합니다.
영적 침체에 빠지만, 그들은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다시 성령을 의지하면(사사처럼) 죄를 정복하고 승리를 맛보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죄성>은 우리들, 곧 그리스도인의 삶을 공격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그들의 지배 아래에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때리시고 어루면져서라도 돌이키게 하십니다.
바울이 로마서 10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아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언제가 그들로 시기가 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있는 우리들
그러나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예수를 믿기 이전에는 그와 같은 죄들을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십자가의 진리의 사실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육신의 정욕과 종 노릇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실제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의 마음은 치열한 영적 전투의 현장이다.
매일 매일 고지탈환을 위해 죄는 공격해 온다.
그러나 그 고지의 사령관은 성령님이시다.
갈라디아서 5:16에는 <육신과 성령> 사이에 있는 치열한 투쟁이 묘사하고 있다.
그 이유는 '육신'과 '성령' 이 본질적으로 상반되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이 우리를 지배할 때 육신의 정욕은 패배한다.
성경은 십자가를 통해 성령이 우리 안에 있는 '육(정과 정욕)'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 비밀을 계시해 준다(갈 5:24).
우리들이 기억할 것은 우리의 육신은 단지 정지해 있거나 잠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육신이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이다!
날마다 우리 육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의 모든 이전에 행하던 '버릇'과 '습관' 그리고 '육신에 속한 모든 정욕과 욕심'을 모두 한꺼번에 십자가에 다 처리한 것을 말한다.
그 가운데는 흡연, 술과 마약, 화투, 도박, 음란, 도벽, 행위로나 입으로, 마음으로 짓던 모든 죄성까지
모두를 십자가에서 못 박고 처리하였다.
이와같이 원리적으로 <죄성>은 못 박혔고 처리되었음에도
<죄의 성질 : 경향성>은 남아 있어 그러한 것에 유혹을 받는다.
감방에서 이미 자신의 죄 값을 처리하였고,
치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감방에서 나오면 다시 그러한 유혹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죄 값은 치루었어도 <죄성>까지 정리한 것은 아니다.
십자가에서 죄값을 그리스도께서 지불하셨음으로 그 죄성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성령을 좇아 그러한 욕망들이 튀어 나올 수 있는 구멍들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어야 한다.
우리의 지성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감성은 죄성에 노출되면 매우 강력한 이끌림, 유혹을 받는다.
이 때에 지성이 죄성을 향해 강력하게 외쳐야 한다.
나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
성령께서 너와 같은 죄성은 단번에 이기게 하신다.
그러므로 SOS를 요청해야 한다.
성령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공격해오는 사단의 죄의 유혹을 처단하게 해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예수 위해 산 것이다."(갈2:20)
이 말씀을 기억하라. 묵상하라. 그리고 선포하라.
우리의 육신이 영적인 의미로 못박히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에서 실제적이고 또 생활적인 모든 관점에서 못박히는 것을 말한다(고후 10:3. 고전 6:12 참조).
바울도 이 싸움이 자신 안에 있었고, 계속해서 싸웠다고 말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나는 씻음 받았다.
더러운 <습관, **아!>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가라.
너는 나와 상관이 없노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너도 함께 십자가에서 정복하셨다.
나도 너를 예수의 이름과 보혈과 그 십자가로 너를 정복하노라.
이는 성령이 내게 주신 권세로 너에게 명령하노라.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방해하는 더러운 사탄아! 너는 떠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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