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대면하기 - 탓 할 것인가? 치유할 것인가?
상처받은 아이
탓할 것인가? 치유할 것인가?
상처받은 아이
나와 대면하기
치유를 넘어서
상처받은 아이
종종 주변에 어린 시절 조부모나 부모로부터 자주 꾸지람과 학대나 언어폭력으로 빨리 독립하고 싶어 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학습이 되어 성격 형성과 행동양식에 영향을 주어 성인이 되어서도 성격 장애는 아닌지 고민한다. 결국 자신도 모르게 자식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었던 어린 시절부터 빨리 자라야만 했던 저는 다 큰 성인이 되기만 간절히 바랐다. 그것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했다.
'(조) 부모님이 나에게 왜 그랬나?'
'아직도 그 일들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아이처럼 몰래 웁니다.'라고.
성인 아이
이것이 나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특히 유년기에 받은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아직까지도 아파하고 홀로 울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어릴 때와 청소년기에 받았던 나쁜 기억이나 경험은 성인이 되어서도 정신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탓할 것인가? 치유할 것인가?
나의 상처는 누구의 탓입니까? 대부분 부모님에게 돌리거나 자신을 탓합니다. 아니 환경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부모님 안에 망가져있던 자아가 그렇게 했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상처 입은 사람이 치유하지 않은 경우에는 성인이 되어 가해자가 됩니다.
(조) 부모님이 당신을 그토록 차별과 무관심과 화풀이로 깊은 상처를 입혔다면 지금의 당신은 어떻습니까? 괜찮습니까? 정말 안녕하십니까?
얼굴은 그 사람의 마음입니다.
얼굴은 얼꼴에서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꼴은 모양, 생김, 형태를 말합니다. 얼은 마음, 정신인데 마음과 정신이 흘러나와 얼굴(顔, face)로 표정을 짓다 보니 화나는 얼굴, 웃는 얼굴 등 다양한 마음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다면 분명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그것(상처-증오, 미움, 원망, 불안, 염려)이 무의식 속에서 여전히 당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누구도 당신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당신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십시오.
공개하십시오.
그러면 치유가 됩니다.
치료의 광선 앞으로 나오십시오.
병은 알리라고 했습니다.
특히 마음의 병은 치료받아야 할 1호입니다.
그러면 자존감, 자신감이 생길 것입니다.
나와 대면하기
힘든 세상을 19살에 시집을 와서 억척같이 살아내느라 얼마나 많은 상처들이 있었을까? 그래도 살아내려고 애썼고, 이제는 팔십을 앞두고 "다 지나간 세월이지 뭐."라고 말하면서도 한숨을 길게 내쉰다. 그러면서도 자식을 위해서는 몸을 도려내서라도 주고 싶어 하는 그 마음입니다.
그러면서 ‘모두 내가 부족해서’ ‘내 탓’이라고 말합니다.
"아니야 엄마! 엄마 탓이 아니야!"
"내가 멀라서 그랬어!
엄마 탓이 아니야."
엄마는 지금껏 어려운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했고, 잘 버텼고, 살아왔어요.
‘괜찮아. 엄마!"
"어떤 모습이어도 엄마 곁에 있어 줄게."
"이렇게 사랑스러운 딸을 낳아주셨는데...’
인생을 살면서 받은 상처, 누구의 탓이 아닙니다. 가해자가 없습니다. 누구도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이 없고, 또 상처를 주지 않고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치유를 넘어서
날마다 자기를 사랑하므로 치유할 수 있습니다. "난 너를 사랑해"라고 자신에게 따뜻하고 친절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종종 입에서 짜증과 원망, 불평과 탓하는 것은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남아있는 상처를 치유하고 해결할 권리와 아픔과 상처를 넘어서 치유자가 되는 것은 오로지 당신 몫입니다.
아직 못다 한 말들, 상처들을 이제 스스로 위로하고 치유해 주세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 것도 권합니다.
당신에게는 상처만큼 강력한 회복과 치유의 힘이 있습니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치유하며 나아가십시오.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대면을 통해, 대화를 통해 치유되어 갈 것입니다.
시편 43편 5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