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아멘.
고마우신 하나님!
저희들을 한주간 인도하여시고 주시고 사랑으로 이끌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저희들이 주님께 경배하며 주의 말씀을 듣기 위해 나왔사오니,
하나님이 저희들에게 말씀해 주시고,
그래서 이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저희들이 깊이 깨닫도록 하나님이 복을 내리어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이 시간에도 우리에게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에 권세를 드러내시고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에 감화가 있게 하옵소서.
우리들에게 집중된 마음을 주시고,
저희들이 한마음으로 주님 예배하도록 축복해 주옵소서.
선하신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시편23편은 표제어로 [다윗의 시]라고 저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2~23절에 보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의 신앙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아우라"입니다.
*「아우라(αύρα/aura)는 그리스어로 '숨결' '바람'이라는 뜻과 함께 '독특한 그 무엇'을 말한다. 즉, 사람이나 작품, 고품격스런 물건에서 우러 나오는 은은하고도 독특한 매력, 강렬한 인상, 느낌, 존재감 등을 의미한다.
시편23편은 매우 짦은 시이지만, 다윗의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신앙의 정수를 보여주는 매우 깊이가 있는 시입니다.
여러분에게 목자가 있습니까?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고백을 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목자로 선택했다는 의미일까요?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여호와(야훼)¹"는 그분의 이름입니다.
뜻은 "스스로 계신 자(자존자)"입니다.
그는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공의와 사랑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이시다.
시인 저자는 원수들에게 추격을 당하고 있었다.
그는 더이상 도망할 수 없는 파김치가 되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얼굴을 땅에 묻고 만다.
"오~ 오 가련하구나. 이같이 불쌍한 자를 여호와는 버리시는가! 여호와를 자신의 주인, 목자로 그렇게 수많은 사람 앞에서 자랑하던 그였는데... 너무나 허무하구나."
이제 끝났다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 순간 놀라운 역전, 이 일어났다.
그동안 하나님은 숨어 계시는 듯 보였는데, 아니 도우실 수 없는 분처럼, 그렇게 계시는 줄만 알았는데 드디어 그가 시인을 맹렬히 추격해 오던 원수들의 말발굽을 한순간에 멈추게 하셨다.
이 순간은 마치 러시아의 문호 도요토예프스키가 현실에서 경험했던 것과 같다. 그가 연병장에서 사형집행으로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간수장으로부터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해 보라"고 5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가족들을 생각났고, 자신을 생각하고... 이제 마지막 시형을 집행하려 총구가 그에게로 향한다.
이제 모든 것이 끝이다.
그순간,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을 그 때에... 황제의 전령이 달려오며 "황제의 명령이오. 사형을 멈추시오."
왜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신가?
“나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초대하시어 ‘내 원수들이 다 지켜보는 그 곳에서’ 나를 위해 크게 잔치를 베풀어 주십니다”.
결국 23편 5절은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즐기며 그들을 배 아프게 만들어야 비로소 자신의 행복이 완전해진다는 것입니다.
저자인 다윗의 생명을 빼앗으려던 원수들이 있었다. 첫째는 사울왕이다.
그는 13년동안 17번을 이사하며 도망하였는데, 그의 먹숨이 백척간두에 놓이는 상황이 여러 차례있었다.
또 자식 압살롬이 반역으로 쫓길 때에 광야로 도망하여 생명을 겨우 보존할 수 있었다.
그때에도 원수의 목전에서 겨우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
여호와만이 나를 가장 공의롭게, 풍성한 사랑으로 인도하실 수 있다.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르지 않는다면 나는 어디서 안식과 위로를 얻을 수 있겠는가!
1.여호와(H3068: יְהוָה, 예호와, 야웨, 야훼 Yhwh)
구약성경을 일관해서 총 6,000여회 나타나는 예호와는 창 2:4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는 구약성경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을 나타내는 고유명사이다.
< יהוה >
* 우에서 좌로 읽는다(우리나라도 1970년대까지 사용되었다)
히브리어 4개의 자음 문자 '요드, 헤, 와우, 헤(YHWH) 를 신성 4문자(Tetragrammaton)라 한다.
이 네개의 신성4문자의 정확한 발음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한글로 번역한 번역본마다 다른 이유이다.
개역 : "여호와", 공동번역 : "야훼", 영역본 "Jehovah" 라고 음역하고 있지만, 그 정확한 발음을 알 수가 없다.
1.여호와의 이름 사용 금지
바벨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비극을 초래한 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함부로, 헛되이, 경솔히) 불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 입으로 말하기를 극도로 조심하다가 그 이름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B.C. 3세기 경부터 회당에서 성경을 낭독할 때, 또는 읽는 자들이 입으로 발음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문자적으로, ) 일컫지 말라”는 계명과 관련된 것이다.
(1)어떤 고대 역사에 의하면 의인 시몬(Simon)이 죽은 후에(B.C. 200년경) 제사장들은 축복 행위에서 여호와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중지했다고 한다(T. Sot 138). 그때부터 신성 4문자 YHWH를 사용하기를 중단하면서, 이 후로 그 발음마저 잊어버렸다. 고대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고, 자음으로만 되어 있어, 정확한 모음기호를 모르는데서 기인한 것이다.
그 6~7세기경 맛소라 학파가 성경에 모음을 붙여 발음할 수 있게 하면서 발음할 수 있게 되었다.
(2)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 예호와(yehowah)와 합성된 인명(人名)을 살펴보면 두 가지 어형을 가지고 있는데, 요(yo-)와 예호(yeho-)이다.
'여호와께서 주신다'는 yonatan(요나탄, 삼상13:3)과 yehonatan(예호나탄, 삼상18:1), yehosua(예호수아: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칭호는 하나님의 이름을 포함하고 있는 아주 오래된 이름이다.
2. YHWH의 의미와 발음
출애굽기 3:14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ehyeh aser ehyeh) 스스로 있는 자(ehyeh)가 나를 보내셨다 하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하나님 여호와( YHWH)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효니라”.
"에흐혜 아셰르 에흐혜" 번역은 "I am He who Exists"(나는 존재하는 자[그]이다). NASB, NRSV는 "I AM WHO I AM"으로 번역했다.
이 문구는 그 의미에 있어서 초시간적(omnitemporal)이다.
'나는 이미 존재하였고, 이제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할 자, 곧 영원히 존재하는 자이다' 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야훼/여호와라>는 이름은 사람이 그를 3인칭으로 말할 때 생긴다.
3. YHWH의 번역들
현재 전세계의 거의 모든 성경 번역본들(극소수를 제외하고)은 '주' 라는 말을 사용하며, 새번역 표준판도 '주' 라고 번역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야훼>란 이름을 제외시키고 있는 추세이다. 이름을 복원하여 지금처럼 사용할 것인지, 인간의 전통을 따라 아도나이라고 읽어야 하는지 여기에는 두 가지 신학이 담겨져 있다.
첫째, 여호와를 아도나이(주)라고 부름으로서 구약의 "여호와 =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일치성을 갖게 한다.
둘째, 고유적인 이름을 사용하므로써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 구약에 하나님의 이름과 인물들과 함께 사용되었던 것을 회복하므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다는 것을 더 깊이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하신다. 사람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고 일하시고 영광을 얻으신다.
4. YHWH의 이름의 중요성
이름(호칭)은 사람이든, 신이든, 사물이든 그 인격과 정체성, 특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어떤 존재의 이름을 아는 자는 누구든지 그 이름에 관한 힘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자와 매우 밀접히 결합되어 그의 본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능력이다.
그래서였을까?
모세는 하나님께 백성들이 자기를 보낸 자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감히 묻기를 "그들이 묻기를 너를 보낸 이가 누구냐고 물으면 내가 당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리까?" 그때에 하신 말씀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너희에게 보낸 이는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념할 나의 표호니라”이다(출 3 :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