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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세와 '예, 아니오'

[明泉] 맑은 샘물 2024. 7. 22. 06:55

우리의 삶의 일상에는 자주 '서약, 다짐, 선서, 약속 등'을 하게 된다. 당장은 그 서약이나 다짐을 이루고, 지킬 것처럼 확신하지만, 다 이행하지 못하고 스스로 깨는 경우가 다반사다.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마 5:33-37)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진실과 거짓에 대하여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산상수훈인 마태복음 5장 37절에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나느니라" 하고 가르침이 있다.
이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
"옳다, 옳다(Yes, yes)" 하고 말하고, 무엇인가를 부정할 때도 역시 아니라는 것을 두 번 반복하여 "아니라, 아니라(No, no)" 하라고 하신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문맥으로 살펴 보아야 한다.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37절)은 맹세에 관한 잘못된 처사에 대한 경고의 말씀(33-36절) 가운데 있다.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에서 나온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맹세했을까?
우리는 자신이 하는 말이 거짓이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했다. 이 말은 자신의 말에 대해 '내 말은 한치 거짓도 없다.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사실이다. 거짓이 없다'라는 것을 상대방에게 인정받기 위해 하는 말이다.
법정에서 허위로 거짓 진술하면 처벌을 받는다.
허위진술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
형법 제10장 위증과 증거인멸죄
제152조(위증, 모해위증)
①법률에 의하여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맹세할 때, "하늘, 땅, 예루살렘 성, 자신의 머리"를 두고 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고,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고,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고, 각자의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다.
사실 맹세할 필요도 없다.  
사실이면 "예"라고만 하면 충분하고, 아닐 경우에는 다만 "아니다"라고 말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 사실에 대해서는 "예, 그렇습니다."라고 하면 되는 것을 덧붙여 "만일 아니라면 내 목이라도 내놓겠습니다." 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혹은  "아닙니다. 만일 내 말이 거짓으로 밝혀지면 내가 성을 갈겠습니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말끝마다 심심풀이 땅콩처럼 자신의 진실을 말해야 할 때, "예, 그것은 사실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합니다." 라고 맹세를 하거나, "아니요, 결단코 아닙니다. 예루살렘을 두고 맹세합니다." 라고 맹세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굳이 맹세하지 않고 그냥, 옳은 것에는 "예" 혹은 거짓이고나 진실이 아닌 경우엔 "아니오"라고 말하면 끝이다. 덧붙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덧붙여 하는 말들은 "악으로조차 나느니라" 라고 말씀을 하셨다.
악의 근본은 사탄이다. 자신의 거짓으로 포장할 때 맹세를 한다.
예수님 말씀은 "그것은 사탄으로부터 하는 거야."라는 말씀이다.

조급해 하거나 흥분하지 말라
왜 이런 맹세를 하게 될까?
대부분 맹세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진정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확신시키고자 할 때이다. 맹세는 자신이 '분명하게 책임지겠다, 그렇게 이행하겠다'는 하나의 약속이다.  
유대인들은 자주 무언가를 할 때 특히 서원하면서 맹세하게 되었다. 그 때 하늘이나  하나님의 이름, 혹은 성전으로 맹세하여 호소하려 했다.
그런데, 이러한 맹세는 그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헛된 맹세를 하였는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본래 신용이나 정직과는 괴리가 있다.  
때로 맹세가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현상황을 모면하려는데서 나오기도 한다.
그러한 마음은 사탄이 그를 지배하여 그렇게 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말이 곧 신용이 되게 하라
집회서에는 "네 입에 맹세하는 버릇을 들이지 말고 거룩하신 분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는 것을 삼가라. ... 맹세를 쉽게 하는 자는 범법을 일삼을 것이며 그 집에는 횡액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맹세를 지키지 않으면 그 벌을 자기가 받아야 하고, 경솔하게 맹세를 하면 두 번 죄를 짓게 된다. 그리고 헛맹세를 하면 죄책을 면할 리가 없으니 그의 온 집안에 재앙만이 쌓일 것이다." (집 23:9~11)

예-예(ναὶ ναὶ) 혹은 아니요-아니요(οὒ οὔ)
말에 진중하라. 말은 곧 신용이다. 우리가 하는 '서약, 다짐, 선서, 약속 등'은 지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지키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하지를 말아라.
“Do not break your oath”(맹세를 깨뜨리다) 맹세를 깨버린다면 그것은 곧 악(마귀)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에게 맹세에 관하여 잘못된 가르침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챙겼다.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마23:16-19) 라고 힐난(詰難)하셨다.
맹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나 지키지 못할 바에야 맹세하지 않는 것이 낫다. 맹세할 때는 지킬 수 있는 것같이 생각되어도 막상 그 때가 도래하면 어기는 것이 다반사이다.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돈을 빌릴 때는 반드시 갚겠다고 말하지만, 막상 갚을 날이 도래해 봐야 안다.
우리말에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그 작심도 자신과의 약속이 아니던가? 그런데 지키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이다.
이렇듯 우리의 일상에는 수많은 '서약, 다짐, 선서, 약속' 등을 한다. 지키기 위해서.
그러나 약속이나 서원이나 맹세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순간 인간의 마음은 악의 지배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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