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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무엇이냐? 진리를 알지니

[明泉] 맑은 샘물 2023. 12. 18. 18:09

세계의 유명 대학들 가운데, 단연 영국과 미국의 대학들을 꼽는다. 그만큼 오랜 전통과 역사, 특별하고 특색이 있는 교육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수재들이 입학하고 졸업하고, 좋은 직장과 학문에 빛을 내는 사람이 된다.

하버드대와 서울대 문양

대한민국의 고3학생들이 입학하고 싶어 로망인  서울대학교와 세계 모든 학생들의 부러움인 하버드대학교, 옥스퍼드대학의 모토는 무엇인가?
로고에 공통적으로 라틴어로 'VERITAS(진리)' 가 들어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 쓰인 《진리》는 무엇을 의미할까? 입학생들에게 물으면 그들은 진리를 무엇이라고 말할까? 뒤에 설명할 빌라도가 질문했던 것과 같은 부류일 것이다.

“진리(ἀλήθεια)가 무엇이냐?”(요 18:38)

이 질문은 빌리도 총독이 곧 십자가에 처형될 예수를 재판하면서 물었던 질문이다.

우리는 먼저 빌라도가 물었던 진리와 예수가 대답해 주어야 할 진리에는 너무나 커자란 격차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 아무 말도 하시지 않은 것이다.
일반적으로《진리》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인간의 이성의 빛(과학-실험과 탐구)으로 알게 된 참된 것이다.
둘째는 인간 이성의 빛을 초월하여 밖으로부터 주어진 빛으러 알게 된 것, 곧 하나님으로 부터 온 빛(구원의 진리)이다.


좀 더 진리에 대해서 살펴보자.
1. 어원적으로
1)히브리어 : "진리"는 히브리어로는 “에메트”(אמת)인데, 알파벳의 א(첫번째-하나님) מ(중간-말씀), 그리고 ת(끝-완성)을 모아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고, 변함없고, 영원하신 "하나님-말씀-완성"을 의미한다. 예수 안에 진리가 있고, 이는 예수가 곧 진리이다는 말이다. 그의 말씀이 진리이며, 그가 보여준 삶이 진리이다.
2) 헬라어 : “알레데이아”(ἀλήθεια)인데,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경험에서 나온 진실과 진리다.
어원적으로는 '진실한, 진리를 사랑하는, 진리를 말하는, 참된, 진실된'이라는 뜻을 가진 '알레데스'(ἀληθής)에서 유래했다.
알레데스[ἀληθής] Adjective edit · (of things) true, real, genuine · (of people) truthful, honest quotations.
어원을 분석해 보면 '알레데스'(ἀληθής)는 부정 접두어 '아'(ἀ)와 '숨기다, 감추다, 깨닫지 못하다'라는 뜻을 가진 '란다노'(λανθάνω)의 합성어이다.
이는 “결코 감출 수 없는, 숨길 수 없는 진리, 더 드러나게 되는 참 진리”라는 뜻이다.

3) 성경적으로 : “참되신”은 이 세상에 불변하는 진리들이나 오직 영원하고 불변하시는 하나님을 뜻할 때에 사용한다.
빛은 어두움 속에서도 숨길 수 없는 존재이다. 진리를 자주《빛》으로 비유하는 이유는 '빛은 어둠을 뚫고 진실을 드러내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4.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에 관한 성구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고후6:7)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롬3:4)

5. 일반적으로 쓰이는 진리의 뜻
VERITAS LVX MEA : 진리는 나의 빛
서울대에 들어서면 정문에 라틴어로 '베리타스 룩스 메아'(Veritas Lux Mea)라고 쓰여있다.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뜻이다.

Veritas lux mea(진리는 나의 빛) : 미국 하버드 대학교 표어 Dominus illuminatio mea(주님은 나의 빛) :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 표어
veritas(f.)는 "진리", lux(f.)는 "빛", 그리고 mea는 "나의(my)"라는 뜻의 라틴어 소유대명사 meus의 여성형으로이다.
원래 문장인 "Veritas lux mea est!"
영어의 be동사에 해당하는 est를 생략했다.
진리는 거져 얻어지지 않는다.
무지하고 어두움, 눈멈에 있던 사람이 사실을 알고자 분투하고 고뇌하며 애를 써서 참에 까까이 다가갈 때, 그 깨달음의 순간마다 무지와 어둠과 눈멈에 벗어나면서 진리의 빛이 마음랲비추어 올 때 그 환희를 느낀다.
이것이 배움의 기쁨이다. 기쁨인데 이것을 시시 때때로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어니한가 라고 말했던 공자의 말과 상통한다.

6. 그대는 배움의 기쁨을 있는가?
가스통 바슐라르(프랑스의 철학자)는 '유년은 존재의 우물이다'라고 했다. 그만큼 가장 많은 배움의 기쁨을 누리는 시간이 '유년 시절'이다는 것이다.
우물은 길아도 끝이 없는 풍성한 생수를 제공한다. 생수는 목마른 나그네에게도 필요하고, 매일 매일 살아가는 삶에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이다.
유대인의 학교에 아이가 입학하면 처음으로 하는 일은 말씀이 새겨진 판에 꿀을 발라서 준다.
그리고 아이로 입으로 핧아 먹게 한다.
그리고는 질문하기를 "무슨 맛이니?"
"꿀 맛이요."
"그래, 토라(율법, 가르침)을 배우는 것은 꿀맛과 같단다"라고 답해 준다.
배움의 즐거움을 실제로 체험하게 해 주는 것이다.
배움은 주입식으로 암기하는 기계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배움은 스스로 배움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다.
때로 서툴고, 부족해도 탐구해 가는 길을 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곳이 학교이다.
어린시절은 우물처럼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많이 담아야 할 시기이다. 그래야 인생을 살면서 삶의 어려운 고비를 겪을 때마다 스스로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이 에너지원이 되어 극복할 수 있게 만든다.

연세대학교의 라틴어 모토(motto)
"VERITAS VOS LIBERABIT"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연세대학교의 건학 이념처럼, 세상에 진리를 비추는 일꾼들을 배출하기 위해 세워졌다.
주님은 이 땅에 생명의 빛을 비추는 빛으로 오셨다. 본래 하나님이 빛이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아들이다.
예수는 육신으러 우리에게 와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되신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다.
그러나 그는 그가 지은 피조세계에, 그가 만드신 사람의 형상으로 세상에 오셨다.
그분 자체가 진리이시고, 또 진리의 전달자이시다.
빌라도 앞에 서 있는 그분은 진리 자체로 서 계신 분이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그분에게 묻는다.
"진리가 무엇인가?"
로마 총독이라면 상당히 학식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는 세상을 대표한다.
나름 빌라도는 지식욕에 불타고 탐구심이 강한 사람처럼 보인다.
로마에서는 황제에게 인정받는, 황제를 대리하는 통치자로 유대에 와 있었다.
오늘날로 하면  하버드, 옥스퍼드 수준의 학업을 마친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수재라는 말을 들었고, 출세가도를 달리던 당대 최고의 두뇌를 가진 명석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왜 예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진리로 오신 예수에 대해 빌라도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예수에게 듣고 싶은 진리는 빌라도 자신에게 특별한 지식을 더해 주거나 그가 들어보지 못했던 로마에서 써 먹을 수 있는(출세에 더움이 되는) 그런 류의 진리였을 것이다.
그가 들어보지 못한 것을 말해 줄 것이라는 기대뿐이었다.

얼마 전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해진 하버드 철학교수 마이클 센델도 "주님만큼 진리를 잘 설명할 수 없다!"라고 했다.
진리는 말로 다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말하는 진리는 깊은 생각에서 얻어낸 것들이다.
그러나 예수가 말하는 진리는 《하늘에 속한 것》이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인정하는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서는 자, 굗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자에게만 《진리는 자신을 드러낸다》.
"회개하라. 천국이 임박했다."
이 말을 이해하는 자에게 진리는 진리가 주고자 하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예수는 세상적인 철학과 사상을 전해주는 선생이 아니다.

하늘에 속한 진리이신 예수

그러나 빌라도는 단지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실 그분을 동정하며 이렇게 말한다.
"보라, 이 사람이다(요 19:5)."
빌라도에게 답할 필요가 없었던 것은 "뭔가 알고 있는" 그것을 설명하고 강의해 줄 그런 선생으로 예수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정치적 목적으로 단지 민란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여 로마제국에 손해가 될 일이 발생되지 않게 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진리의 지식이다.
그 진리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학문이다.
때로 막걸리를 마시며 진리가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댄다.
남보다 좀더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들, 자랑에 속하는 것들이다.
또 호기심에 불타서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진리는 그들에게 말로 대답할 수 없다.
《예 수 안에 있는 진리》는 그 수준이 아니다.
그가 우리에게 말씀하고 주시려고 하는 진리는 우리에게 인생 송두리채 변화를 요구한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전해 주는 진리는 예수님 자신과 함께 살고, 예수의 생각, 태도, 방식으로 송두리채 우리 자신이 바뀌는 것이다.
빌라도가 물어 보려는 질문의 진리는 그저 특별한 그 무엇일 뿐이다.
지적 호기심으로 알게 되는 그 무엇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 진리인가?”(What is the truth?)를 질문하기 보다는 “누가 진리인가?”(Who is the truth?)라고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누가 우리에게 참된 《진리》를 가르치고 전해줄 수 있을까?
그 누가 "그 진리에로" 우리를 인도해 줄 수 있을까?
"그 진리를 아는 그 분"만이 우리를 그 진리에로 인도해 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진리를 이성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아는 것이다.

(1) 그 진리는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하나님만이 절대 진리(불변)이시고, 나머지는 모두 상대적 진리(이성과 과학으로 찾아낸 것들)이다.
(2) 빛 가운데로 인도한다.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 3:21).
진리는 빛이다. 진리의 빛이다. 빛의 진리이다. 그 진리는 모든 이를 이롭게 한다. 그 진리를 아는 자에게 기쁨과 희열을 준다.
(3) 그 진리는 우리를 거룩하게 한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진리는 세속적인 것들에서 구별시킨다. 그 양심을 깨끗케 한다. 하나님과 대면하는 기쁨을 준다.
(4) 그 진리는 우리로 말씀을 행하게 한다.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요일 2:4).
그 진리는 그로 하여금 진리를 아는 것에 걸맞는 삶을 살도록 이끈다.
(5) 그 진리는 우리로 자유케 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진리는 "긴옷을 입은 자"라는 뜻이다. 예수님 당시 노예나 평민들은 긴 의복을 입을 수 없었다.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낸다.
긴 옷은 허드렛일을 하는 잡부가 아니다. 자유인이요, 아들의 신분이 있는 자이다.
진리를 아는 자는 마치 긴옷을 입은 자와 같은 신분과 자유가 주어진다.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모든 죄에서, 죄책에서, 율법에서, 자유로운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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