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회복해야할 진실성과 정직성
오늘날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교회에서 "회개가 사라진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오늘 말씀을 살펴보자.
만일 오늘 주님이 오신다면 우리를 영적으로 진단하시고 무슨 말씀을 하실까?
교훈하실 말씀,
책망하실 말씀,
바르게 하시는 말씀,
의로 교육하시는 말씀을 주셨으리라 생각은 자명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1)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2)회개하여 3)처음 행위를 가지라.
4)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
본문에서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시며 회개를 촉구하신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은 다음 몇 가지 사실들을 우리가 알 수 있음을 알려 주신다.
1)어떻게 해서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곰곰히 생각하라고 하신다. 반드시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리하면 충분히 현재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2)그 상황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회개가 필요하다.
3)처음 신앙, 첫 사랑을 회복하라 하신다.
이러한 과정은 통해 회복을 바라시는 주님의 배려요, 책망이다.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에는 징계가 따르는 법이다.
하지만, 주님은 기회를 주고 계신다.
개인이나 교회에 가장 무서운 형벌을 주께서 주신 은혜를 철수하는 것이다.
은혜와 은사를 거두어 가심이다.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면" 그 결말은 그에 대한 '촛대를 옮기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빨리 회개하는 것이 좋음(토브), 곧 복이라고 할 수 있다.
주께 책망을 받았을 때 그것이 날 사랑하심에서 주신 것임을 기억하자.
사실 본문을 종합해 보면 우리에게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계시며 ‘용서’를 준비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성경 이야기에서 아버지의 '용서하심'을 보여주는 탕자의 비유만큼 가슴이 뭉클한 이야기도 없다.
성경에서 '용서'라는 단어만큼 우리로 환영하고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단어를 찾기 힘들 것이다.
사랑과 용서
하나님이 범죄 한 죄인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보내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셨다.
이는 지옥의 형벌, 곧 멸망에서 벗어나 영생 얻는 《새사람》을 입음이다.
그러므로 그 사랑과 용서를 받은 우리도 죄인을 용서하고 또 그런 자들을 사랑해야 함은 마땅하다고 성경은 말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함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지는 유익은 하나님의 용서의 위대함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만일 우리 자신이 누군가를 용서해 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그 용서는 한 번이 아니라 무한히 참고 기다려줌이 포함된다.
회개를 촉구하는 성구들
①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②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③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시 7:12)
④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3)
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눅 17:3)
⑥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행 2:38)
⑦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행 8:22)
⑧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5).
'진정한'
그런데 하나님의 용서에는 반드시 '진정한' 회개가 전제된다. 하나님은 거짓을 가장 미워하신다.
진정한 회개 없이는 진정한 용서도 있을 수 없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은 누구도 제한하지 않는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자도 무조건 죄용서라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 앞에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 그 진정한 회개의 방법이 정직함과 진실함이다.
정직은 거짓이 없는 마음으로 어느 것도 숨김없이 낱낱이 드러내어 놓는 것이요, 진실함은 참으로 돌이켜 하나님과 화목하고 연합을 이루기 위한 마음의 자세이다.
만일 누가 1) 범죄 하였다면 2) 그것에서 돌이키는 반드시 회개가 뒤따라야 하고, 3) 하나님이 용납해 주시고 허물을 가려 주시는 자비로우심에서 나오는 용서를 경험해야 하고, 그리고 4) 하나님과 완전한 화해를 통해 우리를 세워주시는 회복에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무엇일까? 회개 없는 용서를 정당화하는데서 오는 거짓된 용서이다.
권징이 없는 교회
교회의 참된 표징은 말씀의 올바른 선포, 성례와 권징의 정당한 집행이다.
밀씀 선포에서 복음이신 그리스도가 빠져 있다. 대부분 우리의 믿음을 지나치게 강조한 행위적 열심을 믿음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대부분이 그리스도를 구원 얻기 위한 도구나 수단 정도로 여기지 그리스도와 연합과 동행, 내주, 순종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다.
그저 자신들의 행위적인 경건으로 상급과 구원이 완성하려는 잘못된 생각에 빠져 있다.
그리고 가장 큰 약점은 《권징》이 사라진 것이다. 1년이 아니라 10년에 한 번도 권징이 없는 교회가 많을 것이다.
권징은 세속적 징계가 아니다.
신령적인 일이요, 교회의 의무이다.
그런데도 권징을 회피하는 이유는 성도들이 교회를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교회의 권징을 받지 아니하고 떠난다면 그는 진정 거듭나지도 그리스도를 경험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만일 범죄에 대해 회개시키기 위한 권징과 복음에 위배되는 행위와 교회를 헤치는 행위나 언동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관대하다 못해 교회의 신령적 능력마저 상실해 버린 교회들이 있어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특히, 교회 지도자들이 뚜렷하고 확연히 드러난 죄를 범한 증거가 있음에도 그들이 정죄받는 일도 없고, 회개함도 없다.
그 이유는 "어떤 사람의 윤리 도덕적 행위에 대해 죄냐? 아니냐?"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단지 그 사람이 "누구 편이냐"에 따라 잣대가 달라진다.
또 '범죄한 자'에게 합리화할 명분을 제공하고, "드러난 잘못을 인정하므로 이 정도에서 용서해 줍시다"라고 말한다.
참으로 망조가 아닐 수 없다.
참으로 주께서 하신 말씀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닌가.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주님이 오셔서 네 촛대를 옮기리라"는 추상(秋霜) 같은 음성이 들리지 않는가?
추상(秋霜- 위엄이 있고 서슬 퍼런)
하루 빨리 회복해야 할 태도
오늘 주님의 말씀처럼 어서 빨리 개인마다 "정직성"과 "진실성"을 회복하여야 한다.
또한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 신령한 일에 범과자들이 《진정한 회개》와 그에 맞는 믿음의 증거를 통한 《용서, 그리고 세움과 회복》에로 나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회개없는 용서는 없다."가 없다는 것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