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현대인은 어디에서 쉼과 안식을 얻나?

[明泉] 맑은 샘물 2023. 11. 16. 19:26

현대인의 특징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무엇일까요?
현대 사회의 특징인 급격한 산업화, 지식화, 도시화, 정보화로 물질문명과 기계문명이 삶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에 반해 정신적 피로와 곤고함,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노이로제까지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편의와 쾌적하고 안락한 생활환경을 찾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정신질환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과도한 경쟁입니다.
열등감, 좌절, 우울증 등
둘째는 건강한 가정의 부재입니다.
부모로 부터 받아야할 정서적인 사랑을 공급받지 못했을 때, 특히 부모님의 이혼과 사별 등
셋째는 심각한 부의 격차입니다.
가난으로 인한 받을 의료혜택이나 교육을 포기하거나 받지 못함으로 인해 고통을 겪으며 꿈도 희망도 꺾입니다.
넷째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도 그들과 소통이 없는 군중 속의 외톨이였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특징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무엇일까요?


《공허(空虛), emptiness》

왜 인간의 마음에 공허가 찾아왔습니까?
인간이 이성만을 강조하고, 신앙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성은 생각의 기능입니다.
신앙은 사랑입니다.
신앙 곧 사랑을 상실합니다.
메뚜기류는 더듬이가 없으면 방향을 상실하고 갈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이처럼 인간도 신앙을 포기하는 순간 더듬이를 잃어 버린 메뚜기와 같습니다.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은 잃은 것입니다.
다시금 더듬이를 회복되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작동합니다.
그 회복의 길은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디에서 진정한 《쉼 :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인간은 두 가지 노동을 합니다.
하나는 육체노동이고, 또 하나는 정신노동입니다.
육체노동은 적당한 쉼을 통해 피로를 풀고, 회복해야 다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정신노동 역시 적당한 안식을 필요로 합니다.
육체의 노동도 미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할 때 육체는 피곤해도 마음은 뿌듯하고 즐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소외를 당하고, 마음이 공허할 때에는 어떻게 마음을 달래고 치유받을  수 있을까요?
철학자 파스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가슴엔 다만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하나님의 공백이 있다"(파스칼)
서양철학의 아버지와 같은 어거스틴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inquietum est cor nostrum, donec requiescat in te(1.1.1).
'오 주여,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쉬기까지는
우리에겐 휴식이 없나이다"(어거스틴)
인간은 육체와 마음과 정신과 영을 가진 존재입니다. 때로 육체의 만족을 위해 나머지를 희생합니다. 그러나 영이 만족하면 나머지는 부족해도 불행하지 않습니다. 때로 넘어지고 실패하고  좌절해도 결코 낙심을 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영의 활동인 신앙은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고, 안정을 주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오직 하나님의 품에서만 완전한 쉼을 누리도록 지음을 받았기에 우리는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 그 누가 내게로 오라 초청할 수 있습니까?  
또 누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실제로 쉼을 줄 수 있습니까?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자기를 낮추시고 종의 형체 곧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지금, 예수님은 당신을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예외 없이》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이게는 죄의 짐(죄책감, 질병, 상처, 고통... 등)입니다.
《쉼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28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파스칼은 인간의 가슴이라 표현했고, 어거스틴은 우리의 마음이라 표현했는데 이는 예수님이 표현하신 마음의 다른 표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마음이 쉼을 얻는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마음은 매우 다양하게 쓰였습니다.
마음은 헬라어 프쉬케(G5590)를 우리 말로 번역한 것입니다.
첫째, 구약성경 창 2:7에서는 프쉬케(G5590)는 "사람"(person), 혹은 "존재"(being)로 쓰였습니다.
"나의 영혼(my soul)"과 "나"라는 의미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영혼"("every living soul," 개역한글, "모든 생물")이라는 표현입니다.
창조시 하나님이 호흡을 불어 넣으심으로 인하여 흙이 "살아있는 혼"(living soul, "생령")이 되었습니다(창 2:7).
둘째로,  "마음"으로 번역된 프쉬케(G5590: ψυχή)는 본래는 "영혼, 목숨, 생명"이라는 단어입니다.
영혼은 지각, 욕망, 기쁨과 즐거움의 좌소이지요.
영혼에는 '마음'(Heart) 또는 '속 사람'(inner man)을 의미하는 지식과 이해(시 139:14), 생각(삼상 20:4), 기억(애 3:20) 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음 혹은 "영혼"은 전인격 곧 인간의 전자아의 총체입니다. "영혼"은 의미상으로 "나 자신" 또는 "너 자신"과 동일시 되기도 합니다(삼상 18:1).
사도바울은 고전 15:45에 "산 혼"(living soul)(개역한글, "산 영")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살려주는 영(Spirit)"과 대조하고 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