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성만(聲聲慢),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성성만(聲聲慢)¹,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 이청조(李淸照, 1084~1155) (류인 옮김)
중국 최고의 여성 시인으로 불리는 이청조가 지은 시이다. 그녀가 쓴 이 시는 송나라의 문학 양식(송사(宋词)으로 지은 시이다.
북송(北宋, 960년 ~ 1127년)은 중국의 왕조 중 하나이다. 국호는 송이었으나, 금나라에 의해 개봉에서 쫓겨나 강남으로 남하하였는데, 남송과 구별하여 북송이라 불리었다.
8대 황제 휘종(徽宗)은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갖춘 군주로써, 그의 회화는 북송시대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에서도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1127년(흠종 정강钦宗靖康 2년) 5월 북송이 멸망하고, 휘종과 흠종은 금나라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이청조(李淸照, 1084년~1155년 무렵)는 북송의 제남 태생으로 학자 집안에 태어나, 18세 때 조명성(趙明誠)에게 시집갔다. 남편은 금석학자로서, 주자사를 지내면서 부부가 함께 《금석록》(金石錄)을 편찬하기도 했다.
이청조는 첫번째 남편 조명성과 매우 사이가 좋았었다. 1127년 3월 어머니가 별세하여 모친상을 치루러 먼저 금릉(金陵)으로 떠났다. 이청조는 8월에 책 15수레를 끌고 남하하여 남편과 상봉하게 된다.
그러나 칭저우에 도착했을 때는 조명성 집 서가 십여 층이 전란으로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2년 뒤 1129년(고종 건염建炎 3년) 8월 그녀의 나이 마흔여섯이었더. 사랑하던 남편마저 병사하게 되고, 금나라 군대가 저장성까지 공격하자 그녀는 서둘러 남편의 장례를 치루고 급히 몸만 빠져나와 피난길에 오른다.
이 시에는 이청조 겪은 3가지 고통이 배어 있다.
첫째 망국의 한(恨)이요,
둘째는 사랑하는 남편 잃은 비통(悲痛)이요,
셋째는 고달픈 피난길의 온갖 고생으로 시들어 마른 풀같이 된 고초(苦楚)였다.
가정을 이루어 남편을 뒷바라지 하고, 자식을 양육하는 안정된 사람을 바랐지만, 세상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또 사랑하는 이와 행복한 날을 꿈꿨으나 질병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이별의 고통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젠 몰락한 가정, 잔한 속에 집마저 두고 떠나야 하는 비애(悲哀)까지 그녀의 마음에 고여 있었다.
"썰렁한 정원, 바람 불고 가랑비 내려 겹겹 문을 모두 닫아야 하네"
정든 집을 두고 떠나려 할 때 주인없는 집에 설명하듯 휑하니 바람이 불고,
주인의 슬픔을 아는듯 추적추적 가랑비가 내린다.
이제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정든 집,
모두 잠그고 피난을 떠나려 하니
차마 떼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
차가운 이불과 꺼져버린 향로 새 꿈을 방해하니
시름 많은 여인 일어나지 않고 어쩌랴.
꿈마져도 사라져버린 나이, 앞날에 기약도 없는 시름많은 여인이 되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
새벽녘 내리는 맑은 이슬에
피어나는 오동나무 새싹
봄 감상하고픈 마음 간절케 하네.
피난길에 새벽녘에 내리는 이슬이 오동나무에게는 새싹을 피우는 것을 바라보며
시인도 그런 날이 오기만을 간절히 소망해 본다.
해 높이 솟고 안개 걷히었으나
오늘 날씨 맑을지 궂을지 다시 보아야 하리.
하루가 시작되었는데, 오늘의 일진이 어떠할지는 지나보아야 알 것이 아니겠는가.
萧条庭院,又斜风细雨,重门须闭。
썰렁한 정원
바람 불고 가랑비 내려
겹겹 문을 모두 닫아야 했네.
宠柳娇花寒食近,种种恼人天气。
버들 사랑스럽고 꽃 아름다운 한식날 가까운데
날씨는 사람을 이 모양 저 모양 힘들게 하네.
险韵诗成,扶头酒醒,别是闲滋味。
험운시(险韵诗)*를 만들고
만취한 술에서 깨어보니
또 다른 쓸데없는 걱정 생기는구나.
征鸿过尽,万千心事难寄。
먼 길 가는 기러기 다 떠나버렸으니
마음 속 천만 가지 생각 부칠 길 없어라.
楼上几日春寒,帘垂四面,玉阑干慵倚。
누각 위 연일 계속되는 꽃샘추위
사방에 휘장을 내리고
난간에 기대는 것도 귀찮아하네.
被冷香销新梦觉,不许愁人不起。
차가운 이불과 꺼져버린 향로 새 꿈을 방해하니
시름 많은 여인 일어나지 않고 어쩌랴.
清露晨流,新桐初引,多少游春意。
새벽녘 내리는 맑은 이슬에
피어나는 오동나무 새싹
봄 감상하고픈 마음 간절케 하네.
日高烟敛,更看今日晴未。
해 높이 솟고 안개 걷히었으나
오늘 날씨 맑을지 궂을지 다시 보아야 하리.
1) 시를 짓기 어려운 운자(韻字)로 쓴 시.
성성만(聲聲慢)¹,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쓸쓸하고 쓸쓸할 뿐이라
처량하고 암담하고 걱정스럽구나.
잠깐 따뜻하다 금방 추워지곤 하는 계절
편안한 마음으로 쉴 수가 없네(…)
온 땅에 노란 국화 쌓였는데
지독하게 말랐으니
이젠 누가 따 준단 말인가
창가를 지키고 서서
어두워지는 하늘 어떻게 홀로 마주할까
게다가 오동잎에 내리는 가랑비
황혼이 되어도 방울방울 그치지 않네.
이 광경을
어찌 시름 수(愁) 한 자로 마무리하랴
寻寻觅觅,冷冷清清,凄凄惨惨戚戚。
乍暖还寒时候,最难将息。
三杯两盏淡酒,怎敌他、晚来风急。
雁过也,正伤心,却是旧时相识。
满地黄花堆积,憔悴损,如今有谁堪摘。
守着窗儿,独自怎生得黑。
梧桐更兼细雨,到黄昏、点点滴滴。
这次第,怎一个愁字了得。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쓸쓸하고 쓸쓸할 뿐이라
처량하고 암담하고 걱정스럽구나.
잠깐 따뜻하다 금방 추워지곤 하는 계절
편안한 마음으로 쉴 수가 없네.
강술 두세 잔 마셔본들
밤이 오면 부는 급한 바람을
어떻게 감당하랴?
기러기도 떠나버렸는데
정말로 가슴 아픈 건
이전에 서로 알던 사이라는 것.
온 땅에 노란 국화 쌓였는데
지독하게 말랐으니
이젠 누가 따 준단 말인가
창가를 지키고 서서
어두워지는 하늘 어떻게 홀로 마주할까
게다가 오동잎에 내리는 가랑비
황혼이 되어도
방울방울 그치지 않네.
이 광경을
어찌 시름 수(愁) 한 자로 마무리하랴.
1. 제목 앞에 붙여진 ‘성성만(聲聲慢)’은 곡조 이름이다. 만(慢)은 만곡자(慢曲子)에서 유래한 단어로 박자가 느린 곡에 맞추어 쓴 시라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