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믿음이라고?(2)
율법을 주신 이유와 목적
율법을 주신 이유 :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고, 비참함을 깨닫게 해 줍니다.
롬 4: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죄(불법)를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롬 4:7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율법이 모든 사람을 정죄하고, 가두었습니다.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죄를 깨달음. 이것이 율법을 주신 이유입니다.
그러면 율법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율법의 정죄로 절망 중에 있던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외에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탕자처럼 돌아옵니다.
한마디로 외통수에 걸린 죄인들에게 《신의한수》를 보입니다.
돌이킴
그렇게 회개하며 하나님의 자비하심에로 나아가 호소하는 것입니다.
마침내 절망 중에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이 아닌 다른 길, 그렇게 하나님께 나오는 자에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선물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것은 율법이 아닙니다.
율법 외에 또 다른 길,
율법도 하나님의 의이지만,
하나님의 또 다른 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그것은 이미 율법(모세)과 선지자들이 증거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약속하신 대로 오실 메시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메시아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구주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의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유무식,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동일하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것은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깨달았던 《하나님의 구원방법, 구속의 경륜이요, 복음의 비밀》이었습니다.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 진리를 깨달았던 바울의 감격스러운 탄성
롬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나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토록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고 싶어 몸부림쳤던 시절, 그러나 몸부림칠수록 더 절망의 늪에 빠졌었지요.
율법이 요구하는 대로 나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도 죽었다(?)
여기서 죽었다는 "죽음"은 더 이상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결혼한 여인이 남편이 살아있을 때까지는 남편에게 매여 있었지만, 남편이 죽은 후에는 여인은 자유롭게 되었듯이,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십자가에서 지불하심으로 율법은 "마침, 완성, 성취"되어 더 이상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옛 본성인 자아(나)도 "십자가에 못 박혔다 = 나는 죽였다"
율법의 요구는 십자가로 지불되었다.
그래서 율법이 더 이상 어떤 요구도 할 수 없다. 나에게 어떤 영향력도 미칠 수 없다.
나는 율법에서 완전히 해방되었고, 자유롭다. 십자가에 못 박혔기에 자유로워졌다.
이제 율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값을 치름)으로 끝났다. 그리스도를 를 믿는 자에게 더 이상 영향력을 미치거나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율법의 기능은 완성되었다. 또 완료되었다.
값을 지불함으로 끝났다.
이러한 바울의 증언을 통해 복음이 주는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복음이 주는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까?
율법의 순기능, 죄를 깨달음과 하나님께로 돌이킴
율법은 우리를 단지 죄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믿음과 새 생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갈 2:19)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ζῶ δὲ οὐκέτι ἐγώ, ζῇ δὲ ἐν ἐμοὶ Χριστός· ὃ δὲ νῦν ζῶ ἐν σαρκί, ἐν πίστει ζῶ τῇ τοῦ ⸂υἱοῦ τοῦ θεοῦ⸃ τοῦ ἀγαπήσαντός με καὶ παραδόντος ἑαυτὸν ὑπὲρ ἐμοῦ.”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이중소유격
예수 안에 있는 그 믿음
우리말에는 갈 2:2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라고 번역했다.
하지만, 원문을 충실히 번역하면 '그 하나님의 아들의 그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정확한 번역이다.
킹제임스 성경 번역은 이 부분을 "By the faith of the Son of God"이라고 충실하게 원문을 따라 번역했다. "하나님의 그(유일한) 아들의 그(주시려고 했던) 믿음에 의해서"
왜 바울은 자신이 갖게 된 믿음을 표현하면서
"그(the)"를 붙이고, 마치 그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처럼 표현했을까?
헬라어나 영어에서는 정관사가 붙으면 그다음에 오는 명사를 지시하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the+faith 그냥 믿음이 아니다.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다.
오직 그것, 그것은 유일무이한 것이며, 독특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바울이 이같이 강조한 것은 성경 전체가 가리키는 "그 믿음 곧 특정한 믿음이요, 본질적인 믿음"을 가리키고 있다.
이 말은 이중소유격을 말한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
인격대 인격, 인격적인 관계이다.
또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주신 믿음을 믿고 있는 것이다.
이중소유격은 동격을 강조할 때 쓰인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가 주신 믿음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성경에서는 이중소유격을 번역하지 않고 예수를 믿는 것으로 해석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구원이다. 구원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그의 부활이다.
롬 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부활).
우리는 예수를 통해 하나니이 주시는 믿음을 믿는다. 그 믿음은 예수 안에 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말과 예수로 말미암아 주시는 그 믿음과 동일하다.
그래서 바울은 이중소유격으로 '그 믿음'을 '하나님의 아들의 그 믿음'이라고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가져온,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믿음, 하나님이 우리로 믿게 하시는 그 믿음이다.
이 말은 믿음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우리말로 믿음은 "내가 믿는다"는 말이다. 그리나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내가 믿는 그 믿음은 그리스도가 주시는 믿음이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믿음이며, 하나님이 우리로 믿게 하시는 그 믿음이다.
그것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말한 것이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다. 마치 믿음이 우리가 생산해 내고 내가 만들고 내 소유인 것처럼 착각한다. 이것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그 믿음이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수가 주시는 선물로서 "믿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표현되면 믿음이 인간의 자유의지로 말미암은 것처럼(내가 믿는 믿음인 것처럼) 떠벌리는 펠라기우스나 아르미니안이나 웨슬리안이나 찰스 피니나 인본주의 신학이 거짓임이 판명되는 것이다.
내 믿음은 오직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도록 주신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믿음(은사=선물로 주심)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사 우리의 소유가 되게 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믿음'이며, 또한 '믿음 자체'이시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오이코스, 창시자, 시작)’이시다라고 했던 것이다(히 12:2).
또 성경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고 했던 그 믿음은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디모데에게 주신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를 믿어 믿게 된 그 믿음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믿음이요, "그리스도의 그 믿음" 혹은 "그분의 믿음"이다.
우리가 소유한 《믿음》은 우리가 만들거나 생산하고나 낳거나, 우리의 어떤 작용으로 생긴 것이 아니다.
믿음의 근원, 출처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로 믿어야 할 그것,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는 하늘에 속한 모든 복이다.
이제 우리의 믿음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주신 그 믿음이다.
우리는 그 믿음으로 진리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되며,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그 믿음으로 아버지를 믿으며, 또 그가 주신 그 믿음은 참되고 영원하며, 불변하는 것이다. 그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그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갈 3:23)
그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5-27)
기억할 것은 우리가 믿게 된 《그 믿음》을 자랑할 것이 없음은 그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 '믿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가 주신 것이다.
이 진정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아서,
또 그리스도로 옷 입어서,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연합으로 얻은 것이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가 없으면 안개처럼 사라진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정에 따라 출렁거리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는 연약할지라도
비록 우리들이 넘어지고, 실수와 실패와 좌절 속에 있다 할지라도 내가 믿는다고 하는 믿음은 출렁거릴 수 있다. 그러나 내 믿음이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그 믿음에 대한 확신은 감정에 따라 출렁거리지 않는다. 나의 감정과 상관없이 굳건하다.
그 믿음이 나의 감정 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 영혼 안에, 내 속 깊은 곳에 하나님이 심어주신 믿음이기 때문이다.
내 영혼을 하나님이 지키심으로 내 영혼에 심겨진 그 믿음도 안전하다. 믿음을 주시고 약속하신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심으로 정녕(확실하게) 나를 추격하며 따라오시기에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리고 다윗이 고백했던 것이다.
그 믿음 안에, ἐν τῇ πίστει = in the faith
“너희가 (그) 믿음에 있는가(를)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후 13:5, 개역한글)
“Ἑαυτοὺς πειράζετε εἰ ἐστὲ ἐν τῇ πίστει, ἑαυτοὺς δοκιμάζετε· ἢ οὐκ ἐπιγινώσκετε ἑαυτοὺς ὅτι ⸂Ἰησοῦς Χριστὸς⸃ ἐν ⸀ὑμῖν; εἰ μήτι ἀδόκιμοί ἐστε.” (고후 13:5, BHSSBL)
“Examine your own selves, whether you are in the faith. Test your own selves. Or don’t you know as to your own selves, that Jesus Christ is in you?—unless indeed you are disqualified.” (고후 13:5, WEB)
함께(=연합) 십자가에 못 박혔다(G4957: συσταυρόω, 쉬스타우로오,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다 crucify with) 동사, 직설, 완료수동, 1인칭 단수이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구원의) 믿음"을 그리스도께서 주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십자가에 (하나님이 주신 그 믿음으로) 내가 지금도 소유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믿음으로 "예수를 믿게 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함께 못 박힘을 당한 것이 지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롬 6:6에서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묘사한다 :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 옛사람" 혹은 '우리 옛 자아'가 주님과 함께 못 박혀서 "죄의 몸(마음과 육체)이 파괴되었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죄의 권능이 파괴된다. 그러므로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한다.
갈 2:20하 "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기에는 율법주의에 내맡겨진 죄 많은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말씀 뒤에 있는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배경을 여전히 고찰할 수 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